가족배려가 묘약

이재영 청주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명절이 가까워지면서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마치 목에 뭔가 걸려 있는 것처럼 막히고 가슴도 답답해 고통을 호소하는 주부들이 많다. 마음도 불안하고 초조하여 잠을 설치기도 한다. 특히, 결혼한 지 몇 년 안 되었거나 시댁과 갈등이 있는 주부는 더욱 심하다. 이른바 ‘주부 명절증후군’이다.

주부 명절증후군은 명절을 전후로 가사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신체적 장애를 말한다.

주요 증상으로는 일반적으로 어지럼증을 많이 호소하고 두통이나 소화불량, 복통, 손발마비 증상, 졸도, 호흡 곤란, 심장의 두근거림 등이 나타나며 심하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런 증상은 명절이 부담스러운 주부라면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다. 이 증후군은 전통적인 관습과 현대적인 사회생활 방식이 공존하며 상충하는 우리나라 같은 시대 상황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육체적 심리적 부담

주부들은 명절이 되면 연휴 내내 새벽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집 안팎을 청소하고, 제수를 준비하고, 어깨와 허리가 휘어지도록 ‘음식과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주부들에게는 일년 중에서 가장 강도 높고 많은 양의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 때가 바로 명절이다. 그러나 이런 육체적 고통을 더욱 참지 못하게 하는 것은 명절 동안 겪게 되는 각종 심리적 고통이다. 어려운 경제 형편과 치솟는 대목 물가 속에서 주부들은 차례상과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명절이면 더욱 두드러지는 게 가족 내 ‘성차별’이다. 손 하나 까닥하지 않는 시댁 식구들과 남자들, 그 조상을 위해 음식과 차례상을 준비하면서 주부들은 당연히 불만이 쌓이고 화가 날 것이며, 이를 표현조차 못하고 안으로 삭혀야만 한다. 게다가 흩어져 있는 일가친척이 모두 모이다 보니 시부모, 동서, 시누이들 간에 생기는 심리적인 갈등과 알력도 만만치 않다.

온 가족이 함께 일과 즐거움을 나눠야

주부 명절증후군의 예방ㆍ치료를 위해서는 주부 스스로 명절 동안에 잠시라도 적절한 휴식을 자주 취하고 가사 노동을 분담하여 먼저 육체적 피로를 줄여야 한다. 또 일을 할 때도 주위 사람들과 흥미 있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심리적인 부담감이나 압박감이 쌓이지 않도록 하는 게 좋다. 명절 동안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면 보상 차원에서 명절 후에 충분한 휴식을 갖고 가능하면 자신만을 위한 여가시간을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현재의 가족사회 구조와 문화에서 주부 스스로가 이러한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상당히 제한적이기에 남편을 비롯한 가족의 충분한 이해와 세심한 배려, 적극적인 협조가 절대적이다. 즉 주부가 겪어야 하는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고통을 온 가족들이 함께 나누고 이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주부 명절증후군은 일시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증상은 곧 해소된다. 하지만 주부 명절증후군 증상이 2주 이상 계속된다면 ‘주부 우울증’을 의심해야 하며, 심할 때는 정신과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곧이 명절증후군이 아니더라도 명절 때에는 특히 더 남편의 배려와 도움이 필요하다. 귀성을 시작하기 전부터 남편의 따뜻한 격려와 이해가 아내에게 큰 힘이 되고, 힘들게 명절을 치룬 후에도 남편의 따뜻한 배려가 있어준다면 이런저런 어려움도 봄눈이 녹듯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주부 명절증후군을 예방하거나 이겨내는 요령을 요약해 보자.

1. 명절을 맞이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피할 수 없다면 즐긴다’는 긍정적인 사고와 즐거운 마음을 가져 본다. 특히, 결혼 생활이 얼마 되지 않은 초보 주부라면, 명절을 시댁과 친해지거나 기존의 갈등을 푸는 기회로 적극 이용한다.

2. 장보기와 음식장만, 설거지, 청소 등 가사노동을 가족들과 분담하고 놀이나 휴식도 함께 취한다.

3. 요령껏 음식을 줄여서 경제적 부담도 줄이고, 할 일도 줄인다. 음식준비에 소요되는 시간 단축은 물론 음식낭비로 인한 환경문제도 해결된다.

4. 잠시라도 일하는 중간 중간 적절한 휴식을 자주 취해서 육체적 피로를 줄인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초래되는 근육 긴장의 이완을 위해 심호흡을 하거나 편안한 자세, 스트레칭 등을 한다.

5. 일할 때는 주위 사람들과 공통의 흥미 거리 얘기를 나누면서 심리적 부담감을 풀도록 한다. 마음을 연 대화는 스트레스 해소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6. 고생하는 주부에게 남편 등 가족이 따뜻한 격려의 말과 함께 마음으로 배려한다. 선물이나 여행도 좋고, 가사노동 참여는 기본이다.

7. 정신적·신체적 증상이나 우울감이 2 주 이상 지속되거나 잠시라도 견디기 어려운 점이 있다면 미리미리 정신과 전문의에게 적절한 치료를 받거나 자문을 구한다. 시쳇말로 항간에 떠도는 각종 요령도 문의 상담 가능하다. 그래서 주부 우울증으로의 발전을 막아야 할 것이다.

가정의 양대 기둥 중 하나인 주부가 건강하고 평안해야 온 가정이 화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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