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택(전 제천교육장)

(최성택 전 제천교육장) 대통령 탄핵 사태로 급히 출발한 새 정부 들어 장차관급의 후보자가 발표 되고 국회 청문회 절차를 거쳐 임명 되고 있으나 탈락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제대로 된 인사인가 갑론을박 하게 된다.

공자는 사람을 쓸 때 먼 곳에 심부름을 시켜 그 충성을 보고, 가까이 두고 써 그 공경을 보며, 번거로운 일을 시켜 그 재능을 보고, 뜻밖의 질문을 던져 그 지혜를 보며, 급한 약속을 하여 그 신용을 보고, 재물을 맡겨 그 어짐을 보며, 위급한 일을 알리어 그 절개를 보고, 술에 취하게 하여 그 절도를 보며, 남녀를 섞여 있게 하여 그 이성에 대한 자세를 보는 것이니 이 아홉 가지 결과를 종합하여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좋은 기준이나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여기에 맡겨질 임무 수행에 필요한 고도의 전문성을 겸비한 경륜이 있어야 한다.

왕조 시대에는 벼슬을 하면 감투를 썼다고 했는데 감투는 머리에 쓰는 옛날 관리의 모자로 벼슬이나 직위의 속어로도 쓰인다. 감투는 씌워 주는 이와 받아쓰는 이가 있다. 감투는 알맞은 것을 씌워 주어야하고 쓰는 사람 또한 알맞은 감투를 써야 그 직무를 잘 수행 할 수 있다.

그럼 감투를 어떻게 씌워야 하고 써야 하는가?

먼저 모자를 씌워 줄 사람을 제대로 보고 알맞은 모자(감투) 를 씌워 주어야 한다. 덕스러운 지도자의 대명사격인 유비도 와룡 제갈공명과 맞먹는다는 방통을 만났으나 그의 재능보다 외모를 보고 실망하여 변방인 뇌양현의 현령으로 보냈다. 어느 날 장비가 감사차 들리니 술만 먹고 일을 안했다. 장비가 ‘밀린 송사는 없느냐’ 고 하자 한 나절이면 다 한다고 큰 소리 치기에 ‘그럼 해 보라’ 하니 정말로 한나절에 다 처리하는 능력에 감탄하여 유비에게 천거하여 군사 중랑장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 드러내지 못한 재능을 드러내기 위해 낙성으로 급히 진격하는 도중 매복병에게 화살을 맞고 36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유비는 그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겨 후에 관내후의 작위와 정후라는 시후를 추증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인물 평가 기준으로 삼고 그 중에서도 용모(身)를 첫째 항목으로 꼽았지만 인물이 못났다고 방통을 능력에 비해 낙양현 현령이라는 작은 감투를 씌운 것이 훌륭한 인재를 잃은 것이다.

다음으로 유념 할 것은 자기 능력보다 큰 모자(감투)를 쓰면 얼굴을 다 덮으므로 눈, 코, 귀, 입이 가려져 제대로 못보고 제대로 냄새를 못 맡으며 바른 소리를 못 듣고 바른 말을 못하게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1970년대 대학교 총장으로 재직 중 장관에 발탁된 한 인사는 당시의 얽힌 난제 등 을 해결하지 못하고 병을 얻어 장관직을 그만 두었을 뿐 아니라 의식이 없는 상태로 투병중 생을 마감했다. 시중에선 머리보다 감투가 컸다는 여론이었다.

마지막 기준은 자기에게 알맞은 모자(감투)와 옷을 입어야 한다. 가령 문관이 전쟁터에 나가는 무관이 입는 전투복을 입고 전투모를 쓴 경우를 생각해 보자. 요즈음 언론에 회자하는 원 세훈 전 국정원장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신문 기사를 보면 그는 서울시의 유능한 행정 공무원으로 이 명박 시장 시절 행정1 부시장을 지내고 이 명박 정부에서는 행정안전부 장관에 임명됐다가 일 년 만에 다시 국정원장으로 발탁 되었다. 그러나 그는 정보 업무를 다룬 적이 없고 아는 것이 없다보니 상식을 벗어난 일을 많이 했고 외국에 대한 정보 업무에서도 실수를 해서 국격을 떨어뜨렸다. 국내 업무에서도 대선에 개입하는 등 과잉 충성으로 2017, 8, 30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 되었다. 평생 내무공무원을 한 그에게 정보 책임자를 맡긴 것이나 그 제의를 받아들인 것 모두 잘못 된 인사이다. 국정원장 제의가 있을 때 사양하고 행정 공무원으로 남는 것이 백번 옳았을 것이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라고 한다. 알맞은 감투는 국가에도 이익이 되고 자신에게도 봉사할 수 있는 영광의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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