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시인)

(나기황 시인) 치매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00여 년 전이다. 1906년 독일의 신경병리 학자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가 처음으로 기술했고 그 학자의 이름을 따 ‘알츠하이머병’으로 불렀다.

요즘에야 다 아는 질환이 됐지만 예전에는 치매를 그저 ‘노망’이니 ‘망령 끼’니 하며 노환의 일종으로만 여겨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2017년)에 의하면 우리나라 치매환자는 총 72만 4800여 명이고 치매의 전 단계인 ‘경도 인지장애환자’도 199만여 명(유병 율 27.8%)으로 최근 5년 새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한다.

수치가 말해주듯 ‘치매’는 이제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적 질환이 됐다. 70~80가지의 발병요인이 밝혀지고 예방법도 속속 나오고 있지만 확실한 치료법은 없는 것 같다. 특별한 징후 없이 삶의 갈피에 씨를 묻고 살다가 20여 년의 긴 잠복기를 거쳐 슬그머니 싹을 틔우며 나타나는 질환의 속성 탓이다.

피하고 싶은 질병 1위에 암(癌)을 제치고 ‘치매’가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은 ‘잊혀져간다’는 공포, 즉 존재가치의 상실에 대한 본원적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사석에서 어느 사제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죽음에 관하여 작은 소망이 있다면, 저는 암에 걸려 죽기를 바랍니다. 맨 정신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당시 화제내용으로 봐서, 독신생활을 하는 사제로서 ‘치매’에 대한 공포를 염두에 둔 얘기였다.

시인 가시리는 ‘엄마의 호미’란 시에서 “엄마는 치매로 병원에 누워계시고/똥오줌을 싸기 위해서는/ 용을 써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엄마 머릿속에는 /지난해 호미질 하다 남긴 흙더미가/자꾸만 내려앉아 아득해 지나부다”며 가장 기본적인 ‘배변’의 의지마저 상실한 어머니에 대한 진한 연민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이 잊혀져가고 있다는 절망감마저 흐릿해져 갈 때쯤이면, 환자가족들에게는 인간존엄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갈등과 혼란이 숙제로 주어진다.

‘생각과 기억’이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경계라면, 치매는 본능에 의존하는 ‘동물’의 삶을 강요하는 질환이다.

1995년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알츠하이머병협회(ADI)는 9월 21일 오늘을 ‘세계알츠하이머의 날’로 정했다.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매년 9월 21일을 ‘치매 극복의 날’로 정하고 치매예방 및 관리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문재인 정부에서도 “치매는 국가가 책임진다.”는 슬로건 하에 전국 252개의 ‘치매안심센터’설립을 비롯하여 10월부터 중증치매 본인부담률 10% 인하 등 다양한 정책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국민복지와 사회적비용을 감안하면 ‘치매국가책임제’라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지만 사회 병리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치매’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회적 치매’라는 정식 용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잊혀 짐’으로서 반복되는 사회문제가 개인적인 치매만큼이나 심각한 상처를 주고 있다.

‘사회적 치매현상’으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안전 불감증’에 의한 안전사고다.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아서’ 발생하는 집단기억상실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기조차 부끄러운 부정부패와 권력형 비리도 끊이지 않고 막말과 ‘갑질’ 행태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성범죄와 아동학대도, 군대비리와 학교폭력도, 해마다 반복되는 자연재해도 ‘사회적 치매현상’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치매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사회적 치매현상’을 극복하는 방법도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우정의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맑고 깨끗한 가을의 중심에 ‘치매극복의 날’이 있는 것이 우연일까.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