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논설위원 / 신성대 교수)

▲ 신기원(논설위원 / 신성대 교수)

00에서 만든 체크카드를 사용했는데 엉뚱한 통장에서 돈이 나갔다. 분명 체크카드를 만들면서 동일한 통장에서 현금인출도 되고 물건을 사면 돈이 빠져 나가도록 했는데 이상하였다. 현금을 인출해보니 현금은 해당통장에서 인출되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00을 찾아갔으나 주차할 곳이 없어 인근지역을 헤매다보니 같은 곳을 3번이나 뱅뱅 돌았다. 간신히 주차하고 나서 안으로 들어가니 이번에는 대기하느라 시간이 자꾸 흘렀다.
 할 일이 있어 마음이 급해지는데 내 차례가 되었다. 다행히 지난번에 통장을 만들어준 직원이 나를 맞이하였다. “드디어 해결됐구나”라는 생각에 사정이야기를 하니 본인도 이상하다는 듯 확인해 보고는 “이 카드로 결제하면 해당통장에서 돈이 나가니 걱정 말고 쓰세요”라고 말하였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몇 차례 사용했는데도 그렇지 않았는데... 공연히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이왕 늦은 것 정확하게 확인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마트에 들어가서 물건을 사고 카드를 긁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자동인출기에서 통장 확인을 하니 정리할 내용이 없다고 자막이 뜬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분명 그 직원은 통장에서 빠져나갈 것이라고 말했는데. 오기가 발동하여 다시 00으로 갔다. 
 영수증과 카드 그리고 통장을 한꺼번에 내밀고 직원에게 또 딴 통장에서 인출되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제서야 그 직원은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알아차렸다. 옆에 있는 여직원에게 내 통장을 넘기고 본인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여직원이 확인해보니 현금인출과 대금결제가 각각 다른 통장에서 되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여직원은 죄송하다며 같은 통장으로 연결해줬다. 갑자기 이곳에 오기 위하여 주차할 곳을 찾느라 인근지역을 3차례나 돌은 일이며 마트에 가서 쓸데없이 물건을 샀던 일이며 또 다시 이곳에 오느라 정신없이 서둘렀던 일들이 떠오르며 화가 치밀었다.
 바로 그때 여직원이 카드와 통장을 내밀며 “다른 손님 같으면 언성을 높이고 화를 냈을텐데 손님께서는 마음씨도 좋고 성격도 좋으신 것 같아요.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조용히 참고계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아뿔싸, 내가 그렇게 성격 좋은 사람은 아닌데...
 왜 내가 참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성격이 좋아서일까? 그건 아니었다. 상황 때문이었다. 아무리 내가 잘못한 게 없이 손해를 봤어도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화를 낼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그 직원이 지난번에 나를 위해 열심히 업무처리를 한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열심히 일하다 실수하는 사람은 용서해 줄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그대로 보여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직원에게 비친 나의 모습과 달리 내 안의 나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는데 그것을 적나라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상반된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하고 놀라겠는가.
 사실 우리는 모두 페르소나(persona)를 갖고 있다. 페르소나는 어릿광대들이 쓰던 가면에서 유래된 것으로 카를 융(Carl Gustav Jung)에 의하면 ‘다른 사람에게 비친 나’를 의미한다. 융은 “페르소나가 있기 때문에 개인은 생활 속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반영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자기 주변 세계와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하였다. 필자 역시 다른 사람에게 비친 필자의 모습을 무시할 수 없었다. 우리식 표현으로 하면 체면을 구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내 안에 있는 나의 모습과 겉모습이 일치해서 나타나겠지만 아직은 그렇지 못해서 우리는 화병에 걸리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자기관리를 잘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잘 산다는 것은 자기관리를 잘 하는 것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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