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571돌 한글날이 지나갔다.

올해 한글날은 10일간의 추석연휴 끝자락에 닿다보니 아무런 의미 없이 지나가버렸다.

이날을 전후한 주간에 정부·학교·민간단체 등에서 세종대왕의 높은 뜻과 업적을 기리고 한글날을 경축하는 각종 기념행사도 대부분 열리지 못했다. 아파트 단지와 집집마다 심심찮게 걸렸던 태극기도 이번 한글날은 눈에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나마 관공서에서 길거리에 태극기를 게양해 ‘국경일’이라는 것을 짐작케 했다.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것을 기념하고 우리나라 고유 문자인 한글의 연구·보급을 장려하기 위해 정한 날이다.

매년 한글날이 되면 ‘한글을 사랑하자’, ‘한글의 세계화’ 등 구호가 높아지지만 정작 일상생활 속에 크게 파고든 무분별한 외래어와 외국어의 사용으로 우리 한글은 계속해서 설 곳을 잃어가고 있는 상태다.

한국어로 된 간판 찾기가 힘들 만큼 외국어·외래어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요즘 외래어 표기법 등 맞춤법을 어긴 채 표기된 간판이나 뜻 모를 외국어 간판들은 이제 익숙할 정도다.

실제 청주지역만 봐도 외래어와 외국어로 범벅이 된 간판이 즐비하다.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는 무국적 언어 간판은 물론 표기법을 지키지 않은 채 영어를 한글로 그대로 옮겨 놓아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간판들로 넘쳐났다.

온전한 한글 간판 찾기는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일과 같다. ‘쁘띠앙쥬’, ‘코디블리’, ‘커먼’, ‘지엔지’, ‘곤조’ 등 외국어와 정체불명의 단어로 이뤄진 간판들이 많고 대형 프랜차이즈와 같은 일부 간판들은 대부분 영어로만 표기 돼 있기 일쑤다.

이처럼 무분별한 외국어·외래어 간판으로 인한 불편은 시민들의 몫이다. 옥외 간판의 경우 어린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된 표기법이 맞춤법인 것처럼 인식될 수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글 바꿔 쓰기 등 언어파괴도 심각하다. 단어의 본뜻에 구애받지 않고 모양만 비슷하면 자음이나 모음을 다양하게 바꿔 적는다.

‘대전광역시’는 ‘머전팡역시’가 되고 ‘21세기’는 ‘리세기’가 되는 식이다. 사람 이름도 예외는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박ㄹ혜 전머통령’으로 ‘유재석’은 ‘ㅤㅇㅡㄲ재석’이 된다.

모양이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근’대신 ‘ㄹ’을, ‘광’대신 ‘팡’을 썼다.

이른바 ‘야민정음’에 따른 표현이다. 야민정음은 야구갤러리의 ‘야’에 ‘훈민정음’을 합친 표현이다. 디시인사이드 야구갤러리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초기엔 소수의 은어로 사용되다가 이용자가 늘면서 다른 커뮤니티로 퍼졌다.

일부 표현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단어를 자기들 맘대로 바꿔 쓰는 게 창조냐. 한글을 파괴하지 말라’는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글은 세계 언어학자들이 모두 인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익히기 쉬운 글자다.

571돌 한글날을 보내면서 위대한 문화유산의 한글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국민운동으로 승화되길 소망한다. 한글이야말로 세계화시대 가장 경쟁력 있는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이자 자산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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