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오메가-3 지방산은 뇌신경과 세포막의 구성성분이면서 우리 몸의 주요한 생리작용을 돕는 제3의 호르몬이다. 요즘 사람들이 약을 밥 먹듯 하는 것은 몸 안에서 이 호르몬이 만들어 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제 3의 호르몬을 만드는 주재료가 바로 오메가-3 지방산인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아무 것에나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식물성 지방에만 숨어 있는데 그것도 들깨에 벌 섶에 꿀 들어차듯 가득가득 차 있다. 이놈들은 우리 몸 안으로 들오기만 하면 골목 조폭처럼 몸 안 이곳저곳을 기웃대며 기능들을 지배 관리한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자연 식품 중에서 병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식품 열 가지를 선정하였는데 그 중에서 한국산 들깨, 꿀, 마늘이 뽑혀 10개 중에 세 가지나 차지하였다. 들깨가 바로 신토불이 진, 선, 미에 뽑힌 것이다. ‘본초강목’에서도 들깨는 천연 소독약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아내가 이러한 들깨의 효용론을 듣고 온지 백일 정도 지난 것 같다. 아내 때문에 한 낮의 폭염을 아랑곳하지 하지 않고 들깨를 텃밭에 꽂아 넣었다. 이 녀석들은 폭염과 폭우를 견디며 가을로 왔다. 마을 앞 신작로의 코스모스를 거쳐 백마산 허리를 휘돌아오는 가을바람처럼 아내가 나타났다. 그러더니 일몸배 차림의 아내는 낫을 내 코앞에 들이밀고 갈아달라는 것이다. 맙소사 갑자기 들깨를 베어야겠다는 것이다. 들깨 잎은 항상 은행나무 잎새 목전에서 먼저 노랗게 물이 든다. 들깨 잎이 저리 되었으니 그리해야겠는데 갑자기 들깨 벨 생각을 한 연유가 궁금하여 물었더니 이장님이 들깨를 베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저녁에만 얘기했어도 좋았지 않느냐는 되물이 말을 속을 씹으며 낫을 숫돌에 벅벅 문질렀다.

아내는 연신 허리를 굽히며 들깨를 베어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들깨를 베는 것이 아니라 뿌리 째 뽑아대는 수준의 낫질이었다.

나는 아내를 불러 세우고 낫질하는 법을 강독하였다. 그 옛날 아버님이 내게 들려주시던 자상한 어조와 따뜻한 시선으로 강독의 질을 극대화하였다. 이야기의 골격은 낫을 빙그르 돌리며 사뿐하게 베라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논둑을 깎으실 때 나는 매번 소를 뜯기고 있었다. 풀들은 아버지의 낫 끝에 넘어지면서 연신 비명을 질러댔다. 그런데 그 비명 소리에는 여지없이 풀 향기가 섞여 오는 것이었다. 그 넘어지는 풀들의 향그러움. 지금도 논둑길을 가면 그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이것 바로 천리향이 아니고 무엇이던가.

아내의 낫에서 넘어지는 들깨들도 연신 비명을 지른다. 아내의 낫질을 제법 사뿐히 받으며 우수수 떨어지는 노란 깻잎이 속삭인다. 아마 푸르고 푸른 젊음은 날들의 얘기일 것이다.

아내의 낫질 끝에서 생의 마지막을 향기로 장식하고 있는 들깨들을 나는 무심히 바라본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는 깻단을 또 털자고 할 것이다.

강상윤 시인은 “뭇매질에도 향기를 낼 줄 아는 / 저 삶을 닮을 수는 없을까” 하며 깨를 터는 모습을 아름답게 형상화하였다. “들깨단을 턴다 /푸르죽죽하게 얻어맞는 깨줄기들,/ 공기방울이 쿨렁쿨렁 터져나온다 / 작대기를 휘두를 적마다 / 공기방울 속에 안겼던 깨 냄새가 /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 나는 더 이상 작대기를 쳐들 수가 없어 / 그것들을 손바닥에 넣어 부벼 본다 / 공기방울들이 기다렸다는 듯 / 다시 한번 터져나온다 // 뭇매질에도 향기를 낼 줄 아는 / 저 삶을 닮을 수는 없을까 /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 차려내는 저 향기로운 밥상 / 나도 저런 삶이었으면 좋겠다 / 한없이 맞으면서도 향내를 낼 수 있는, // 향기의 홀씨가 아직도 / 공기방울을 터뜨리며 이리저리 흩날린다” (강상윤의 들깨를 털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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