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섭(인성교육칼럼니스트)

 

(인성교육칼럼니스트 반 영 섭) 지난달 문대통령이 밝힌 광복절담화에서 “북한의 레드라인은 ICBM에 핵무기를 탑재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또 미국이 북한을 ‘세컨더리보이콧’으로 압박한다는 등 주요한 낱말에는 영어로 대체한 말들이 난무한다. 경희대 수원캠퍼스에는 ‘글로벌커뮤나케이션’이라는 학부가 있다. 우리말로 국제정보교류학부라고 하면 되는데 굳이 영어로 써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또한 학교 앞 길에 가면 스쿨존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이라는 말 보다 스쿨존이 선진국적 표현인가 보다. TV뉴스에서도 아나운서가 뉴스를 시작하자마자 ‘아홉시 헤드라인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외래어, 외국어가 뒤섞인 멘트부터 날린다. 그리고 우리말이 되어 버린 슈퍼, 카센터, 가든 등 국적불명의 외래어가 수두룩하다. 요즈음 젊은이들 몇이 모여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꼭 다른 나라에 와서 외국어를 듣는 기분일 때가 종종있다. 국적불명의 언어와 문자가 난무하고 비속어와 저질스런 문자가 판을 치고 있다. 거기다가 한글날 행사명까지 ‘세종대왕뮤지컬’, ‘외국인 세종대왕 골든벨’, ‘한글디자인 전시포럼’ 등 굳이 외래어를 사용해야만 하는 걸까? 올해 10월 9일은 세종대왕즉위 600돌과 571돌 맞는 한글날이다. 세종대왕이 1446년 10월 9일에 훈민정음(한글)을 반포하셨다. 한글날은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세종대왕의 위업을 기리는 날이다. 인류문명은 말을 적는 문자를 통해서 발전한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사라지지만 문자를 통한 기록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구적으로 보존되기 때문이다. 문자에 의한 기록과 전수와 보존이 없었다면 인류문명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겠는가? 인류문명은 글자를 사용하는 민족들의 힘으로 창조되고 발전해 왔다. 지구촌에는 자기나라 글을 가지고 있는 국가는 몇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한문을 쓰다가 백성을 어여삐 여긴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시어 오늘날까지 편리한 한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만약 세종대왕께서 요즈음 서울에 나타나신다면 완전 문맹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되실 것이다. 요즈음 길거리의 간판은 여기가 외국인지 한국인지 구별이 안가고, 각종 상품명, 자동차이름, 아파트이름, 심지어 사람이름까지 외국어로 짓는 실정이며,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식자들의 말과 글에 오히려 더 많은 외국어가 남용된다는 사실이다. 외국어를 많이 쓰면 유식하고 우리말만 쓰면 무식하다는 건가? 더군다나 인터넷 상에서는 이상야릇한 신조어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는 받침 없는 말이 서슴없이 유행한다. 키득키득 웃는 모습을 `ㅋㄷㅋㄷ'으로 까지 변형을 하니 통역이 필요할 정도다. 인터넷 문화가 발달되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글파괴는 갈수록 태산이다. 청소년층들이 인터넷상에서 한글축약형비속어를 남발해 만들어낸 정체불명의 신조어들이 판을 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한글과 이상한 문자들을 혼용한 속칭 ‘외계어’용어들이 급속히 퍼지면서 한글파괴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인터넷 용어들은 한글날을 맞는 우리 한글사용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청소년들이 입만 뻥긋하면 욕말을 내뱉는다. 존○, 씨○ 등 듣기 민망한 욕말을 즐겨 사용한다. 이쯤 되면 나중에는 정말 순수한글이 언제, 어디서 소리소문 없이 완전 변형된 언어로 돌변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신조어가 생기고 항상 은어나 비속어는 있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 의미가 너무 왜곡되고 철저하게 비하하고 순수성도 떨어지는 비속어라면 단지 인터넷 시대의 한 세태라고 보고 넘어가기엔 매우 큰 문제다. 최근 재미있는 노랫말을 가진 대중가요 하나가 나왔다. `거리를 헤매며 기웃기웃하는 세종대왕/...간판을 읽지못해 쩔쩔매고 있는 세종대왕 우리 세종대왕/...세상이 돌아, 머리가 돌아...' 세종대왕 지하에서 통곡하시다. 반면에 2008년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공용 문자로 받아들였고, 요즈음 한류 열풍을 타고 일본, 중국 여성들이 한글 배우기에 열중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들은 주객이 전도된 일이 아닌가? 그나마 이런 소식들이 한글날을 맞아 세종대왕께 위안을 드리는 소식이지 않을까? 프랑스는 1994년부터 외국어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외국어는 반드시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써야 한다. 그래서 컴퓨터도 l'ordinateur(로르디나퇴르)라 한다. 파괴된 우리의 언어를 순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한다. 언어순화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대중적인 캠페인을 펼치거나 국어에 대한 사회적으로 강한 인식을 각인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문자와 언어를 잘 가꾸는 일이 무엇보다는 시급한 시점에 우리가 서 있다. 어릴 때부터 국적있는 교육을 가르치고 부모형제부터 고운말 고운 문자 쓰기를 생활화하여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일이 급선무이다. 한글은 고도의 과학성과 체계성 때문에 컴퓨터 사용에도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한글은 문자중의 문자요, 가장 탁월한 한국문화의 상징이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창조물이며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이제 우리는 더욱더 한글날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보고 영원히 한글을 사랑하며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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