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방 보아 똥 싼다’ 는 말이 있다. 뒤가 급한 사람이 뒷간은 멀고 급한 김에 신분이 낮은 하인이나 더부살이하는 사람의 방에다 볼일을 본다는 말로, 사람의 지위를 보아 대접을 달리 한다는 뜻이다. 세상살이에는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한 늙수그레한 마나님이 딸네 집을 다녀오다 마침 환갑잔치를 벌이는 양반집이 있어 요기라도 할 심산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유흥으로 흥에 취해 있는 집주인양반이면서 잔치의 주인공이 차일 친 마당에 차려놓은 손님접대용 상차림 쪽을 얼듯 내려다보니 옷차림이며 얼굴몰골이 초라한 할망구가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앉아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래서 마당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하인을 불러, “오늘은 좋은 날이니 낯설고 초라한 거지라고 해서 쫓지 말고 한 편 구석에 딴 상 차려 선 대접해서 보내라!” 했다. 하여 막사발 밥에 콩나물대가리며 김치 쪽, 생선대가리가 차려진 음식을 따로 앉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정승들이 행차했다며 주위가 야단들이다. 그리곤 평교자(平轎子)를 탄 정승이 들어오는데 그래도 묵묵히 앉아 음식을 계속해 먹고 있던 마나님이 그 정승을 흘깃 올려다보고는 그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혼잣소리로 ‘첫째구먼!’ 하더니, 두 번째 들어오는 평교자의 정승을 보고는 ‘둘째구먼’ 하고 그리고 끝으로 들어오는 평교자를 보고는 ‘셋째구먼’ 하는 게 아닌가. 이러는 걸 보고 듣고 있던 하인이 고개를 한번 외로 틀더니 이내 주인양반에게로 달려가 귀엣말로 속삭인다. 그러는 걸 보고 한 정승이, “사람 불러다 놓고 뭘 둘이만 속닥거리오?” 하니, “다름이 아니오라 저기 저 허접스런 할망구가 대감들의 행차를 보고 송구스럽게도 첫째구먼, 둘째구먼, 셋째구먼 하고 중얼거렸답니다.” 하고 손가락으로 마나님 쪽을 가리킨다. 그러자 세 정승이 그 쪽을 보고는 일시에 놀란다. 그리고는 ‘아니 어머님이 납시었네!’ 하고는 셋이 황급히 버선발로 뛰어 내려가 절을 올리며 예를 갖추는 게 아닌가! 그제야 주인양반이 황망한 기색으로 마나님을 극진히 모시고 올라와 대접을 달리 해 드리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양반은 방 보아 똥만 쌀 줄 알았지 그 마나님이 ‘울음 큰 새’ 라는 걸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울음 큰 새’란, ‘모양이나 우는 소리가 크다’ 는 뜻으로 ‘지체나 명성이 실제보다 높다’ 는 걸 비유하는 말이다. 이 ‘울음 큰 새’ 가 지금 이 마을에도 있다. 환갑 갓 지난 황 씨이다. 황 씨는 두 아들이 다 잘 되어 각기 다니는 회사에서 신임을 얻어 과장자리며 대표자리를 맡고 있는 소위 말해 인텔리 들이다. 그 아래 두 딸도 다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다. 자신도 땅 부자여서 남에게 도지 주면서 농사지어 아쉬울 게 없이 산다. 그래도 자식 티 내 티를 하나도 내지 않는다. 그런데다 얼마나 검소한지 모른다. 변변한 외출복 하나 없이 10년 20년이나 됐음직한 허름한 차림을 하고도 떳떳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하니 동네는 물론 인근에서도 그러한 황 씨라는 걸 다 알아서 추앙을 받는다. 그런데 젊어서부터 가는귀를 먹어서 군대 가서도 고문관노릇을 했다는데, 50줄을 넘어 60줄에 들어서면서 귀가 더욱 어두워져 갑갑하고 답답한 사람이 되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마을을 질러 들어가 소로가 나 있는 골짜기에 제법 넓은 야산이 있다. 거기에 한 도회지 사람이 조그마한 공장을 지어볼 요량으로 현장을 보기 위해 차를 몰고 찾아들었다. 마을을 지나려는데 몇 번이나 빵빵 소리를 내도 모른 척 비키지 않는 사람이 있어 운전기사가 내려 큰 소리로 나무라면서 옷소매를 잡고 길 가장자리로 끌어냈다. 그제야 그는 두리번두리번 대며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그 도회지사람이 소로가 나 있는 데서부터 현장까지 걸어가 보니 장소는 맘에 드는데 차가 닿지 않는 게 흠이었다. 그래서 이장을 찾아가 그 얘기를 하고, 그 소로의 땅임자가 누구인지 찻길이 되도록 허락을 받아달라고 했다. 이장은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그를 땅임자에게로 데리고 갔다. 그런데 앗, 아까 운전기사가 큰소리로 나무라며 길 가장자리로 끌어낸 바로 그 사람이 아닌가! 황 씨였다. 도회지 사람은 차라리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장의 자초지종의 말을 들은 황 씨가 대뜸 도회지 사람에게 말한다. “그렇게 해 드려야지요. 마을 번창해 이로운 일인데 그렇게 허락을 해드려야 하지요.” 그리곤 빙긋이 웃어 보인다.

이후, 그 도회지사람은 명절 때만 되면 고기며 과일을 한 아름씩 안고 황 씨를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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