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식<충주교육지원청 교육장>

김문식<충주교육지원청 교육장>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대한한국 국민 누구나 잘 아는 ‘고향의 봄’ 노래 한 소절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은 더해만 간다. 내가 태어난 곳은 산골로 불리던 월악산 아래 동네 제천 덕산면 선로3리다. 오랜만에 시간을 내 고향을 찾아가 보면 내가 생각했던 고향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모르는 사람들만 오가는 모습에 가슴 아린 추억만 곱씹으며 되돌아온다. 사람들마다 자신이 태어나고 뛰어놀던 고향을 평생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간다.

고향은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했던 장소다. 봄이면 꽃을 따고 여름에는 고기를 잡고 가을이면 밤을 줍던 고향은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며 마을 원형은 변형됐고, 마음속 고향과는 점점 멀어져 간다.

인간이 태어나 성장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또 하나의 고향도 있다. 앞서 언급한 고향은 실존 고향이지만, 또 다른 고향은 마음속 생각인 심상(心想)의 고향이다. 심상의 고향은 추억 속 고향과는 다른 영혼의 세계로 정리된다. 피안의 세계와 종교의 세계에 있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정신적 고향을 말하며, 시대와 종교에 따라 변화한다.

수많은 철학자들은 영혼의 세계가 영원히 머무르는 정신적 고향을 갈구했다. 종교는 다양해도 인간은 영원히 행복하게 머무는 세계를 찾아가길 갈망하고 있다. 그 곳을 불교에서는 극락세계라고 하고, 기독교는 천당이라고 부른다. 서양 철학에서는 유토피아로 불리고, 일본은 무릉도원이라고 한다. 생을 살아가며 실제의 고향도 중요하지만, 인간들은 무릇 정신적 고향을 갈망하게 된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거리가 멀수록 더욱 가고픈 곳이 고향이다. 타향에 살며 우연히 만난 고향사람은 언제든 반갑다. 늘 반가운 이유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이제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보다 지나온 시간이 더 긴 시점에 서있다. 그리운 사람들을, 추억의 시간을, 잊지 못할 일들을 흑백 영상으로 되돌려보곤 한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가 끝난 뒤 집으로 가는 도중 앞개울 웅덩이에서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아 고무신에 담아 맨발로 집으로 돌아가던 때가 종종 있었다. 고무신에 담아온 물고기는 집으로 돌아와 보니 피라미와 버들치는 죽어있었지만, 미꾸라지만 살아있는 게 신기했다. 소주 됫병에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집어넣었더니 좁은 공간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모습이 실제보다 훨씬 크게 보여 신기하기까지 했으니, 과학의 세계를 모르던 시절의 추억이다.

당시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 뒷동산에 올라 소나무 송진이 엉긴 관솔에 불을 지펴 주워온 빈 깡통에 넣고 동내 형들과 둥글게 돌리며 달맞이를 하곤 했다. 비록 뒷동산에 올랐지만 월악산 영봉(靈峰) 위로 커다랗게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연신 절을 해대며 소원을 빌었던 어린 시절 고향 기억이 아직도 달달하다. 보름달을 향해 빌었던 소원은 비록 교육자의 길은 아니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교사로 수많은 제자를 배출한 뿌듯함이 인생의 멋진 페이지를 장식하고도 남을 분량이다.

30여년 넘게 일선 교육현장에서 제자들을 길러낸 배경에는 내 고향 어른들이 이름 붙인 어래산(御來山)과 문필봉(文筆峰)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고향 어른들이 붙인 어래산은 임금님이 태어나든지, 아니면 다녀가시든지 하는 뜻이라고 들었다. 문필봉은 글을 쓰는 일이라는 뜻풀이로, 시골 촌놈들의 출세를 바라는 촌로(村老)들의 여망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평생 미술과목을 가르치며 보낸 교사의 길은 고향을 품고 있는 월악산 영봉 기개와 임금님이 태어날 수 있다는 어래산, 촌놈 출세를 바라는 고향 어른들의 여망인 문필봉으로 정리된다. 소나무와 산을 주제로 한 수많은 내 작품의 밑바탕은 평생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스승으로, 한 가족의 가장으로, 교육계와 사회 한 구성원으로 잘 살아올 수 있었던 근간은 항상 고향과 고향사람으로 귀결된다. 일선 교육현장의 끝자락에 서 있는 지금, 되돌아보니 내 살던 고향이 또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 기억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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