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시인

(나기황 시인) 100℃가 되면 물이 끓기 시작한다. 비등점에 다다랐다는 신호다. 물질이 연소하기 시작하는 온도를 발화점이라 하고 물질이 전혀 다른 성질로 바뀌기 직전의 한계온도, 한계압력 상태를 ‘임계점’이라 한다.

이 청명한 축제의 계절에, 전쟁운운이 내키지 않는 주제지만 한반도 상황이 어쩌면 폭발직전의 ‘임계점’에 와 있지 않나 싶다.

몇 년 전만 해도 회갑을 맞는 친구들 간에 ‘우린 그래도 축복받은 세대’라는 덕담을 주고받았다. 부모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니 ‘낀 세대’니 하면서도 IMF의 질곡을 잘 헤쳐 왔다는 자부심이 있고, 전후세대로서 전쟁 없이 이만큼 살아온 것도 큰 복이라는 얘기였다.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는 대한민국에서 “설마 전쟁이야 있겠어?” 하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어서다. 이젠 아닌 것 같다. 이러다 “정말 전쟁이라도 벌어지는 것 아냐?” 하는 불안감이 더 크다.

한 신문만평에 북한 김정은이 트럼프의 어깨에 올라타서 트럼프의 머리카락으로 미사일모양을 만들어 장난치는 모습이 실렸다. 트럼프는 떼쓰는 아베총리를 받쳐 안은 채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그림이다. 만평 제목이 ‘성질테스트’다.(박용석 만평)

제목대로 누가 더 막 돼먹었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유엔연설에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한 국가 지도자로서 입에 담지 못할 조폭수준의 막말을 쏟아내고, 이에 질세라 어린(?)나이에 살육의 공포정치로 주변정리를 마친 김정은은 자폭에 가까운 도발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체재유지를 위해서 핵무기개발에 올인 하고 있는 ‘로켓 맨(rocket man)’이나 미국 최우선이라는 미명하에 한반도 위기쯤 우습게 여기는 ‘매드 맨(mad man)’이나 우리에겐 위험천만한 지뢰밭 뇌관들이다.

문제는 말싸움이 됐든, 군사압박이 됐든, 정작 주인인 우리자신이 빠져있다는데 있다.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투 맨(two mans)’의 정신상태가 온전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내 집 마당에서 전쟁 놀음을 해도 ‘전시작전권’조차 확보하지 못한 현 상황에서 마땅히 내어 놓을 대안도 없다.  마른 콩 가지를 터는데 천지사방 튀는 콩알을 어떻게 허실 없이 주워 담을까 걱정해야 하는 형국이다.

공포는 또 다른 공포를 불러온다.

어마무시 한 핵항모가 들어오고 죽음의 백조(B-1B)가 날아다니고 스텔스전투기에 ‘참수작전’ 특수요원까지 실전 연합훈련이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미 틸러슨 국무장관은 15일(현지시간) “대북 외교적 노력은 ‘첫 번째 폭탄’이 투여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첫 번째 폭탄’이라니, 대표적 대화파로 알려진 미국외교수장의 입에서도 ‘임계선’을 건드릴만한 거친 표현이 나왔다.

‘파티마의 제 3비밀’이 요즘 다시 회자되고 있는 것도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를 보는 시각이 심상찮다는 반증이다.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의 파티마에서 성모마리아가 여섯 차례나 나타나 세 어린이에게 알려 주었다는 세 번째 예언인즉슨, "불과 연기가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리며, 큰 바다의 물은 끓는 물처럼 치솟아 오른다. 그 환란에 의해서 지상의 많은 것은 파괴되고 무수한 사람이 멸망한다."는 것인데 3차 세계대전(핵전쟁)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안보만큼은 여야가 따로 없이 머리를 맞대고 한 목소리를 내는 일이 시급하다. 그리고 믿는 것이다. 위기 때마다 발현된 국민의 열망과 의지가 위대한 기적을 이뤄왔음을. 어떤 이유로도 한반도에서 ‘워(War)는 워!(never)’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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