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청주시하천방재과장>

나는 하천 유지·관리를 담당하는 공무원이다.

청명한 이 가을 무심천을 지날 적마다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불과 서너 달 전, 무심천은 재앙의 원천이 될 뻔했던 ‘공포의 강물’이었음을 잊은 듯 유유하다.

2017년 7월 16일.

청주에 기록적인 폭우(290㎜, 시간당 91.8㎜)가 내리기 이전까지 청주시는 자연재해로부터 비교적 안전지대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폭우는 그런 안이한 생각들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청주시가 자연재해로부터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 자연재해로부터 안전지대는 없다는 것을 각인시켜 준 날이 바로 이 날인 것이다. 그리고 시민과 공무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예기치 못한 재난과 슬픔을 슬기롭게 극복한 감동적인 날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집중호우의 원인은 주로 태풍을 동반한 장마전선의 형성에 있었다. 태풍은 1년에 22~25개 발생하여 그 중에 2~3개의 태풍이 우리나라를 관통하면서 호우를 동반하였으므로 태풍진로를 예상하면서 자연재해의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기상패턴이었다.

그러나 올해 청주시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는 기상관측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맞게 됐다. 남쪽의 북태평양 고기압과 북쪽의 저온 건조한 기압대가 충돌하면서 많은 양의 수증기가 유입되어 장마전선이 특정지역에 머무르는 게 특징이었다. 이로 인해 청주시를 비롯한 천안, 음성, 증평, 괴산, 즉 특정지역을 대상으로 집중폭우가 쏟아졌다. 그러므로 비가 내리는 폭이 좁아서 지역별 강수량 편차가 매우 컸다.

그로 인해 일부 하천 범람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지만, 다행히 무심천과 미호천이 넘치지 않은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청주시에는 총 194개의 하천이 흐른다. 그 중 대표적인 하천이 무심천과 미호천이다. 특히 무심천은 청주시내 중심을 관통하고 있어서 범람할 경우 천문학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곳이다. 나와 관계업무 공직자들의 관심과 우려는 모두 두 하천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두 하천의 수위가 턱 밑까지 차오르고 있을 때, 가슴을 졸이며 현장을 순찰하면서 끊임 없이 인간능력의 한계를 실감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가뭄해소를 위해 그리도 애타게 바라던 비가 아니였던가. 나는 나도 모르게‘비여, 제발 멈추어다오’를 간절히 간절히 외치고 있을 뿐, 촌각을 다투는 재앙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의 작은 인간에 불과했다. 그리고 천만다행히도 서서히 비는 그쳤고 하천 범람위기를 넘겼다. 당시를 회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날만큼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이를 계기로 필자는 두 하천이 범람을 피 할 수 있었던 이유를 크게 3가지로 분석해 보았다.

첫째, 무심천 수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운천동(290㎜), 사직동(318㎜),모충동(294㎜), 수곡동(294㎜), 내덕동(290㎜), 북문로(318㎜), 영운동(284㎜), 용암동(284㎜)지역은 시가지에 접해있는 무심천을 중심으로 250㎜ 이상의 많은 비가 내려 이 지역에 침수피해가 유난히 컸다. 반면, 무심천 상류지역인 가덕면(116㎜), 남일면(204㎜), 남이면(121㎜) 지역에는 상대적으로 비가 적게 내려 무심천 수위 상승을 더디게 하였는데, 이것이 무심천 범람위기를 피할 수 있게 했다.

둘째, 가장 많은 비가 내린 낭성면(261㎜), 미원면(223㎜)지역의 강우가 무심천, 미호천으로 유입되지 않고 한강수계인 괴산 달천으로 유입된 것이다. 이로 인해 한강수계지역에는 피해를 입었지만, 청주 시내를 관통하는 중심하천 즉, 무심천과 미호천의 범람을 피할 수 있었다.

셋째, 무심천의 수위는 미호천에 영향을 주고, 미호천의 수위는 금강에 영향을 준다. 다행히 미호천의 수위에 영향을 미치는 문의면(35㎜), 현도면(1㎜)에 비가 적게 내렸고, 금강 상류지역인 옥천, 보은, 대전 지역 등에도 비가 적게 내려 금강 수위가 평상시의 수위에 머무르고 있었다. 따라서 범람 위기에 처한 미호천의 강수가 빠르게 금강으로 유입될 수 있었고, 이는 무심천에서 미호천으로의 유입을 원활하게 하여 두 하천의 범람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7.16 폭우는 1967년 기상 관측 이래 최고 기록을 세웠다. 전문가들은 폭우의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를 지목하고 있고 기후변화가 본격적으로 인류를 강타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해수면이 섭씨 0.5도 상승할 때마다 대기가 머금는 습기는 3% 증가하고 온난화에 따라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지난 100년간 20㎝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번 물 폭탄사태를 겪으면서 청주시도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다는 인식의 틀을 벗고 치수의 중요성을 체감하는 소중한 계기가 돼야할 것이다. 안전한 도시를 위한 하천관리방안과 재해에 취약한 위험요인을 찾아 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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