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창 주간 삿포로 특별강연
민중 속으로 뛰어든 이들의 공통점
탈식민지화, 탈영토화 위해 온몸바쳐
일본제국주의 '천황 따르라'주입교육
폭력 아닌 '정답'논리로 인민들 지배

지난 16일 오후 일본 로이톤에서 열린 주 삿포로 대한민국 초영사관 초청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의 특별강연에는 훗카이도 지방정부인사, 학계, 기업관계자, 재일동포 등 300여명이 참석, 성황을 이뤘다.

(동양일보) 주 삿포로 대한민국 총영사관은 지난 16일 오후 일본 로이톤 삿포로 3층 로이톤홀에서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을 초청, 일본의 나츠메 소세키와 한국의 포석 조명희를 소재로 한 특별강연을 개최했다. 이날 강연 내용을 야규마코토(柳生眞)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가 정리해 보내왔다. <편집자>

 10월 16일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호텔 로이톤삿포로(ロイトン札幌)에서 주 삿포로 대한민국총영사관 주최로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의 특별강연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와 조명희(趙明熙)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두 작가를 통해 한·일 관계를 다시 생각하다’가 개최되었다.  바깥에서는 한반도나 일본의 혼슈(本州)보다 먼저 첫겨울의 기운이 다가오고 있었으나 강연 장소인 300명을 수용하는 대형 홀이 곽 찼고, 청중들의 뜨거운 열기가 충만하고 있었다. 시작하기 전 홀에는 5살 때 고아원에서 도망치고 10여 년 동안 혼자서 살다가 세계적 가수가 된 최성봉 소년이 부른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 그리고 존 레논의 ‘이메이진(Imagine)’, 고바야시 사치코(小林幸子)의 ‘꿈의 끝(夢の涯て)’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모두 영혼의 자유를 갈구하고 계속 꿈을 가지는 것의 중요함을 부른 노래들이다.
또 2시간의 강연을 마친 후에는 만찬회가 열렸는데, 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하려고 하는 참가자들이 끊이지 않았고, 김 주간은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주최자 쪽에서 따로 자리를 마련하고 김 주간, 영사관 관계자와 미래공창신문 야마모토(山本恭司) 교시 편집인과 필자만이 경식을 취하면서 야심한 시각까지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상아탑을 떠나서 ‘민중 속으로’
이 강연에 즈음하여 김 주간은 지금 왜 오늘 조명희와 나츠메 소세키라는 한일의 대표적인 작가를 이야기하느냐에 대해 밝혔다. 포석 조명희(抱石趙明熙)는 잘 알다시피 1894년 마침 동학혁명, 갑오개혁, 청일전쟁이 일어난 한반도 역사가 대전환된 해 충북 진천(鎭川)에서 태어났다. 서울중앙고등보통학교(현 중앙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3.1운동에 참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석방 후 그는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 동양철학과로 유학하면서 재학 중에 문학에 눈을 뜨게 되고 1920년에는 희곡 ‘김영일(金英一)의 사(死)’로 창작극작가로 데뷔했다. 다음해 고국에 돌아온 그는 1920년대에 대표작인 ‘낙동강(洛東江)’을 비롯하여 많은 시, 희곡, 소설 등을 발표하면서, 독립운동·노동운동·사회주의운동에 헌신했다. 하지만 식민지 관헌의 탄압이 심해지자 그는 러시아의 한인촌에 가서 고려인 문학과 교육에 힘을 기울었다. 그러나 스탈린 체제하에서 ‘일본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총살당하고 말았다.
소세키도 역시 어린 시절은 불우하고 여러 번 입양되다가 돌아오는 것을 반복했다. 젊은 소세키는 한시문(漢詩文)을 즐겼으나 문명개화의 시대적 요청에 따라 제국대학(帝國大學·뒤의 도쿄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에히메(愛媛)와 구마모토(熊本)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가 문부성(文部省)의 명을 받아서 영국 런던에 국비유학생으로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런던에서 신경쇠약을 앓고 귀국명령을 받게 되고, 귀국 후에는 도쿄대학 교수와 제일고등학교 강사를 했지만 결국 교직을 그만두고 ‘아사히신문(朝日新聞)’ 기자의 신분으로 소설가가 되었다.
김 주간은 그들의 삶이 30대에 한국을 떠나서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유학하고 또 50대에서 대학총장의 지위도 다 놓아두고 단신 일본에 가서 도쿄대학에서 공공철학 운동을 시작한 자기 인생과 겹친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보다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은 소세키와 조명희가 조금 스스로를 굽히기만 하면 상아탑 안에서 그런대로 안정된 생활과 신분 보장, 그리고 명예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리고 문학자로써 민중 속으로 뛰어들고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위해 활명연대(活命連帶)하려 했다는 점이다.
젊은 소세키는 영어와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일본인으로서 무엇 때문에 영문학을 공부하는가? 문명개화(文明開化)니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니 하기 위해 영문학자의 설을 일본에 수입하고 짝퉁 영국인이나 되자는 것인가?”라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게다가 실제로 대영제국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살아보니까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대제국을 건설해본들 거기에 사는 영국인들은 별로 행복한 것 같지도 않다. 그는 당시의 제국 일본의 밝지 않는 미래를 미리 들여다보고 마침내 신경쇠약에 걸리고 만 것이다.
‘산시로’에서 주인공 산시로(三四?)가 도쿄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콧수염을 기른 (소세키의 분신과 같은) 남자와 같은 자리에 앉으면서 러일전쟁 후 “앞으로는 일본도 점차 발전하겠지요?” 라고 말하자 그 남자가 “망할 거야”라고 딱 잘라버리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그는 일본제국주의의 말로를 이미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엘리트 교원의 자리를 내던지고 소설가가 되었으며, 근대주의·자본주의·제국주의에 분주하면서 내면이 ‘식민지화’된 지식층의 모습을 비판적 또는 풍자적으로 많이 그렸다.
한편 조명희의 경우는 보다 직접적·구체적으로 한반도 땅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되어 있었다. 그는 식민지 민중의 비참한 모습을 소설에 많이 묘사하고 ‘낙동강’에서는 제국주의 권력에 의한 고문으로 빈사상태로 석방되는 독립운동·사회운동 지도자를 등장시켰다. 그 작품에는 경찰 측 인물이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그것이 오히려 일본제국주의의 비인간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비록 놓인 상황은 다르지만 조명희도 소세키도 식민지화·영토화된 영혼들을 구해내기 위해 자기 스스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민중 속으로 뛰어든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정답 없는 물음’을 계속 물어야
강연 중 김태창 주간은 김선우 화가가 소세키 작품을 읽고 그림으로 표현한 ‘행인’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그리고 조명희의 작품세계를 그려낸 ‘아무르 강의 생명수’, ‘낙동강’을 소개하고, 김영미 시인의 시 ‘낙동강이 흐른다’(일본어 번역: 오구라 기조 교수)를 낭독했다. 또 나츠메 소세키, 조명희, 그리고 중국을 대표하는 루쉰(魯迅)의 세 사람에 대해 김태창 주간이 직접 지은 시 ‘정답 없는 물음’도 소개했다.
그런데 이 ‘정답 없는 물음’과 관련해서 김 주간은 일찍이 어느 고등학교 교장 연수회에서 강연했을 때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어떤 교장선생이 “선생님께서는 고등학교와 대학은 어디가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했다. 김 주간은 “고등학교까지는 정답이 있는 교육을 합니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것은 정답이 없는 것을 가르치는 곳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삿포로의 청중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 같다. 강연 후의 만찬회 때 한 여자 대학원생이 찾아와서 “나는 정답을 찾기 위해 대학교로 들어갔는데 정답이 없는 곳이 대학이라면 그 정답은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라고 말했다. 뒤에 영사관 직원들과 함께 티타임을 가졌을 때에도 어느 직원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정답’이야말로, 달리 말하면 재빨리 정답을 얻고자 하는 심리야말로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로 이어지는 무서운 함정이다. 서구제국주의는 막강한 군사력만 가지고 세계를 지배한 것이 아니었다. 서구 열강은 ‘서양화가 정답이다’라는 논리로 세계를 농락했고, 일본제국주의는 “천황폐하를 신으로 받들고, 천황의 정부의 법을 따르고, 천황의 백성인 일본인과 같이 돼라. 이것이 정답이다”라는 논리로 식민지(본국도)를 지배했다. 히틀러의 나치스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정답이었다. 스탈린 시대의 소련에서는 스탈린이 정답이었고, 중국에서는 모택동과 중국공산당이 정답이고,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정답이다.
이처럼 모든 제국주의·전체주의는 폭력·통제·감시보다 오히려 ‘정답’을 가지고 인민들을 지배한다. 그러니까 시민이 자유로움을 잃지 않으려면 먼저 계속 생각하는 백성(思民)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유에의 뜻을 굳게 지키는 백성(志民)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계속 생각하고 뜻을 지키는 것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지배 권력이 내놓는 가짜 정답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뜻과 생각으로 옳고 그름, 밝음과 어두음을 가리고 항상 밝음(哲)을 선호하는 백성(哲民)이 되어야 한다고 김태창 주간은 강조했다.
조명희와 나츠메 소세키는 모두 뛰어난 지성을 가지면서 그가 누릴 수 있었던 안정된 지위와 생활을 내던지고, 여러 가지 병이나 관헌의 탄압과 싸우고, 시민들과 함께 문학작품을 통해 사민(思民)·지민(志民)·철민(哲民)이 되고자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김 주간은 영혼의 식민지화, 영토화의 마지막 단계가 바로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달로 인한 기계에 의한 식민지화라고 경계한다. 사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대치되고 장래 없어지는 직업이 거론되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회사 골드만삭스(The Goldman Sachs Group)는 이미 서기 2000년 당시 600명 있었던 금융투자가를 현재 2명까지 줄었다고 한다. 또 2016년 3월에는 이세돌 기사(棋士)와 AI의 알파고(AlphaGO)가 대전하고 4패 1승한 일은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인공지능의 승리라는 문맥에서 거론될 경우가 많지만 김 주간은 오히려 이세돌이 거둔 1승에 주목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정보처리·분석능력이 인간을 훨씬 능가하는 인공지능이라도 감히 생각해낼 수 없는 묘수(妙手)를 인간은 생각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유를 잃지 않으려면 생각하고 뜻을 세우고 철학해야 한다. 그리고 비록 힘들더라도 정답이 없는 물음을 계속 물을 줄 알아야 된다. 하지만 혼자서 그 험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벗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
조명희와 나츠메 소세키의 인생과 작품을 통해서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미래의 모습을 보여줬다. <야규마코토(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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