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가창오리들은 낮에는 저수지에서 쉬다가 어둠이 들녘에 내려앉기 시작하면 날아오른다. 처음에는 몇 마리가 나뭇잎처럼 하늘로 떠오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가창오리 떼는 하늘에 장엄한 퍼포먼스를 만들어낸다. 이들이 만들어낸 날갯짓의 수용돌이는 먼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고 오는 듯 장중한 바람소리까지 연출해 낸다. 하늘을 울리는 수많은 새들의 날갯짓 소리! 단재 신채호 선생이 우리에게 들려주려했던 하늘북소리가 또한 이러했으리라.

이 군무는 7분가량 펼쳐지다가 희미해지는 황혼에 점점이며 서서히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마치 생일잔치의 촛불이 꺼지고 찾아드는 어둠과 같이, 우리가 맺고 있던 인연들과 점멸하는 찰나의 간극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하늘북소리도 잦아들고 발그레한 황혼의 불빛마저 숨을 죽이고 나면 우리 빈 가슴은 천진한 바람의 유배지가 되고 만다.

금강 하류 둑 부근, / 저물어가는 하늘가로 날아오른 / 가창오리 떼의 군무가 자욱하다 / 새들의 날개 파닥이는 소리가 귀 찢어놓을 듯하고, / 새들은 세찬 바람의 기류에 얹혀서 / 한창 뼛속을 비워내는 중이다 // 새들이 하늘에다 내리고 있는 뿌리들이 / 완강하게 허공을 움켜쥐고 있구나 / 땅에다 내리는 한 생애의 뿌리도 / 이리 감당하기 힘든데, / 저토록 많은 생애가 모여 만든 하늘의 뿌리라니 / 번성한 뿌리의 대군(大群) 이라니 -박재옥의 <하늘의 뿌리> 전문. 박 시인은 가창오리의 군무를 ‘하늘의 뿌리’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들이 내린 뿌리들이 푸른 가을 하늘을 완강하게 움켜지고 있다. 시상이 자유롭게 하늘을 유영한다. 시인이 이미 가창오리의 영혼을 닮아버려서 그러하리라.

가창오리 떼를 보고 와서 연못가에 솟대를 세우기로 하였다. 밤나무와 북나무와 물푸레나무로 솟대 3형제를 만들 참이다.

솟대는 개인의 입신을 축원하여 세우거나 마을의 영지 등에 수호신으로 세운다. 장원급제한 자가 가문을 내세우려 세울 때는 이를 화주(華(柱)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솟대의 모양은 다양하지만 긴 장대 꼭대기에 세 갈래로 된 나뭇가지를 고정하고 세 마리의 새를 조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체로 마을의 입구에 장승과 함께 세워져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신앙물이 된다. 새는 나무나 돌로 만드는데 대체로 철새인 오리나 기러기를 형상하여 올린다.

고대인들은 철마다 날아드는 오리나 기러기를 인간과 신령의 세계를 오고가거나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신조(神鳥)로 생각하였다. 솟대에 얹은 새의 머리는 그들이 돌아갈 방향을 바라본다. 즉 솟대 방향은 태어난 곳을 향한 귀소본능의 표식인 셈이다. 인간세계와 이승의 본향이 바로 고향인 때문일 것이다.

우리민족의 시원은 북쪽에 있는 시베리아 바이칼 호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의 솟대는 모두 북쪽을 가리키고 서 있고 바이칼에서 날아온 오리와 기러기를 대부분 형상하고 있다. 바이칼에 가면 ‘부근에 살던 사람들이 인구가 늘어나자 한 부족의 족장이 그를 따르던 풍백과 우사 등을 300여명을 이끌고 동쪽으로 내려갔다’는 설화가 있다. 이는 환웅이 풍백과 우사 등 3000여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에 내려 왔다는 내용과 일치한다.

일본에는 우리나라의 솟대를 모방하여 신사의 입구에 세워둔 도리이가 있다. 대마도의 와타즈미신사는 가야 김수로왕의 자손이 세웠다하기도 하고 장보고의 소가였다고도 하는, 일본 천황의 직계를 봉안한 곳이다. 여기에는 천신과 해신이 만나 결혼하여 초대 천무천황을 있게 한 용궁설화가 있다. 그런데 이곳의 도리이 중 두 개가 항상 물에 잠겨 있는데 이 도리이가 북쪽인 경주를 가리키고 있다. 일본 천황가의 고향이 한반도라는 사실이 허구는 아닌듯하다. 나는 솟대에 기러기를 올리면서 서역 안탐을 돌아 바이칼 호수로 돌아갈 내 삶의 기러기를 그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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