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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별빛가루 두 눈에 반짝이던 여인
동양칼럼-별빛가루 두 눈에 반짝이던 여인
  • 이상주
  • 승인 2017.10.2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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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 중원대 교수

(이상주 중원대 교수) 1978년 10월 어느 날 저녁. 동쪽 하늘엔 달님이 누군가 보아주길 바라며 얼굴 반쪽을 하늘가에 살며시 내비쳤다. 밤바람은 정가운 사람의 따스한 품을 그립게 했다. 그때 청주 인구는 10만이 안됐다. 충북의 수도 청주의 중심거리는 조용하면서 그런대로 밤정취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 거리에 나오면 보고싶은 사람도 우연히 만나기도하고, 말만한 미녀들의 각선미도 감상할 수도 있다. 꼭 목적이 없어도 그냥 나오면 누군가 만날 것 같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맘이 들어, 너나 나나 청주사람들은 이 거리로 나온다. 청주 사람들이 시내간다고 하면 의례 이 거리다.

그는 언젠가부터 길을 걸어가면서 음료수도 마시고 빵도 먹곤했다. 혼자 술집과 제과점도 잘 갔다. 당시로는 좀 파격이다. 그날 그는 빵과 음료수를 먹으려고 청탑제과점엘 들어갔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당시엔 유명한 제과점이었다. 여기저기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도 앉아있었다. 출입문 가까운 왼쪽에 빈 의자가 있어 그 자리를 잡았다. 앉고 보니 앞 탁자 마주보이는 의자에 아는 얼굴이 앉아있었다. 그는 기억력의 천재다. 아니 그녀가 뇌리에 남아 있었기에 단번에 얼굴을 알아봤다. 그런데 내성적이라 바로 인사하지 못했다.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는데 얼굴이 화끈했다. 그녀가 그런 자기의 마음을 눈치챘을까봐.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도 감추려 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반가워 놀라는 표정이다. 눈 안의 동그란 흑진주에서 별빛가루가 두 눈 가득 반짝반짝했다. 더욱 뽀얗게 그녀의 얼굴이 그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그녀는 뜻밖의 만남에 눈이 확 커지고, 아는 체 인사하려 붕어입이 되려다 멈춘다. 먼저 인사하면 자기의 속내를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한 듯하다. 그는 그녀의 그 표정을 읽었으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그러나 좌불안석 잠시 그냥 그대로 앉아있는데 그를 등지고 앉아있던 그녀의 친구 두 명이 뒤돌아본다. 아는 사람이 자기 맞은편에 앉아있다고, 그녀가 말한 모양이다. 잠시 망설이다가 더 이상 머뭇거리면 후회할 것 같고 순발력도 재치도 낭만도 없는 사람이라 할 것 같았다. 순간 그의 내성적인 성격이 벌떡 일어나 그녀의 앞에 다가섰다. 그리고는 안녕하십니까. 누구신지 잘 모르겠는데요. 기억력이 좋으리라 믿었습니다. 전에 우리 미팅하고 기약없이 헤어질 때, 다시 만나게될 것을 굳게 믿는다고, 제가 말했지요. 그런데 이렇게 다시 만났네요. 기억하고 있다는 듯 빙그레 웃고 있었다. 제가 한 말이 맞았지요. 꼭 다시 만나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그때 말한 저의 전통을 깨고 싶습니다. 그녀는 계면쩍게 웃으며 예에, 미안해요. 사실은 저도 친구들한테 미팅에서 만났던 분이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친구들이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직감하고 다가온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입니다. 친구분들이 모두 이지적이시군요. 저 친구를 다시 만나서 기쁩니다. 한 턱 내세요. 네 기회를 주셔 감사합니다. 뭐든지 드세요. 바밤바 먹자. 바밤바가 유행할 때였다. 더 맛있는 거 드세요. 오늘 친구 덕에 잘 먹었어요. 별 말씀을, 약소합니다. 너 오늘 이분과 함께 먼저 들어가렴. 알았어. 오늘 이 친구도 전통을 깼습니다. 무슨 전통요. 그렁게 있어. 오늘은 집이 바라보이는 근처까지만 바래다주겠습니다.

그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7월쯤 미팅에서였다. 다섯 명이 미팅하기로 했는데, 여학생 한 사람이 안 나온단다. 그래서 주선한 여학생이 얼굴이 빨개져 대타를 알아보느라 공중전화를 독점했다. 파트너를 정하지 못한 채 다방에서 한 시간 가까이 따로 앉아 있기가 지루했다. 그가 제의했다. 네 사람이 먼저 파트너를 정해서 얘기 나눠. 내가 나중에 오는 그 여학생하고 대화할께.

“혹시나하고 나갔다 역시나 한다”이게 당시 미팅의 상식이었다. 그는 미팅의 원칙이 있었다. 사랑한다 말하지 말고 사랑한다 말하라. 군대시절 그는 사랑의 성공미학 3강령 5조목을 연구정립했다. 그 하나가 격구이구환(擊球而球還)이다. 멀리하려 할 수로 가까이 다가오고 가까이 다가가려 할수록 멀리간다. 미팅 상대에게 기대도 실망도 하지말자. 다만 차 한잔에 사랑과 우정을 타마시며 자신의 꿈과 조국의 미래를 노래하자. 문학과 예술 그리고 정치사회에 대한 비평을 안주로 삼자. 그리고 사람의 본심을 잘 알아서 결혼을 잘하자. 의미있게 인생을 사는 법을 논하자. 그때 그 미팅에 그녀가 대타로 나왔다. 그녀는 상식을 캔 퀸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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