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남 <수필가>

중학교 때 우리 집은 청주를 떠나 북이면으로 이사를 했다. 염소 목장을 하기 위해서였다.

마을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외딴집이었는데 목장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논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하얀 눈이 수북이 쌓인 겨울밤에 보름달이 뜨면 삽으로 똑 떠다가 꽃밭에 심어두고 싶을 정도로 목장은 아름다웠다.

문학 소녀였던 나는 ‘새농민’에 원고를 보냈다. ‘나는 태양빛을 줍는 소녀’였던 걸로 기억이 된다.

그때 전국에 있는 애독자한테서 엄청난 편지를 받았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 시절에는 집 주소도 함께 실려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주소를 보고 편지를 보내오지 않았을까 싶다.

목장으로 들어오는 길옆의 복숭아밭에 꽃이 활짝 핀 어느 날, 그날도 나는 여러 통의 편지를 받았다.

화창한 날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복숭아나무에 달린 수 천 개의 꽃등 때문이었을까.

그 중의 한 통의 편지 봉투를 여는데 가슴이 콩닥 거렸다.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남학생 이었는데 글씨가 무척이나 정갈했다. 그 깔끔함이 은근히 좋았지만 선뜻 답장을 보내지는 않았다.

왠지 모르게 쑥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무슨 마음에서였는지 그에게 답장을 썼다. 며칠 후 편지가 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지? 지난번 글씨는 정말 정갈했는데 이번에는 성의 없는 글씨 때문에 기분이 팍 상했다. 그런 이유로 답장이 없는 줄도 모르고 기다리다 궁금했는지 세 번째 편지가 왔다. 이번엔 정성이 가득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한동안 편지만 주고받다가 상대방의 얼굴이 궁금해지기 시작 하였고 나의 바람을 거절하지 않은 그는 드디어 사진을 함께 보내 왔다. 두툼한 편지 봉투를 손에 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의 남학생일까? 그러나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피부가 뽀얗고, 눈이 커다랗고, 얌전해 보이는 상상속의 모습을 한 독사진 이라고 생각했는데 교련복을 입은 단체 사진 중에 본인인 듯 한 남학생의 얼굴에 볼펜으로 아주 작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편지속의 너는 강아지풀처럼 보드랍고 봄날처럼 따뜻했는데 단체 사진속의 그 남학생은 누구란 말인가. 하지만 그 낯 섬을 훌쩍 뛰어 넘어 그와의 편지 쓰기는 계속 되었다.

내가 정성들여 그림도 그리고 자작시도 써 놓은 공책을 그에게 보내면 시를 여러 편 적어 보내 주었다. 그러다가 약 6년쯤 됐을 때 뚜렷한 이유도 없이 철부지였는지 내 쪽에서 편지를 보내지 않게 되었고 그러다가 편지 쓰기는 끝났다.

중학교 3학년일거라는 생각을 못해서 처음엔 놀랐다는 그 착한 소년도 이제는 예순이 가까울 나이가 되었으리라. 지금쯤 나처럼 글을 쓰고 있을 것 같다. 종달새 같았을 편지속의 소녀가 순수하게 좋아했을, 어쩌면 소녀의 첫 사랑이었을, 그 분을 언젠가 한번쯤은 마주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보고 있다.

누구에게나 첫 사랑은 꽃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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