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주 청주대 교수

(정진주 청주대 교수) 지난 칼럼에 필자는 우리도 이제 세대당 주차대수 1대 이상의 기준을 검토할 시기라는 글을 드렸다. 여기에 더해 해묵은 논란거리를 하나 꺼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필요성에 대해 적극 공감하지만,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차고지증명제”이다. 자동차 소유자가 주차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관할 관청이 자동차 등록을 거부할 수 있는 제도이다. 현재 차고지증명제를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제주도에서는 이 제도를 자동차와 같은 큰 개인 물품을 집 밖에 방치, 다른 사람 또는 공익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되며, 자기 책임하에 적절한 보관 장소를 설치하자는 단순하고 합리적인 원칙을 제도화한 것이라고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관광을 떠나는 곳 중 하나가 일본이다. 일본에 갈 때마다 부러운 것이 하나 있다. 모든 도로에서 불법주차된 차량을 거의 볼 수 없는 것이다. 도시든, 농촌이든, 주택가 도로이든 그렇다. 불법 주차된 차량이 없으니, 차량 통행도 상대적으로 원활한 것 같고, 비상차량의 통행도 확보되고, 다툼의 소지도 발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려서부터 “남에게 절대 피해를 끼치지 말라”는 중요한 일본의 가정 및 사회교육도 한 몫을 하겠지만, 1962년부터 차고지증명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불법 주차문제로 이웃끼리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둘째 치고, 화재시에 소방차와 응급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도로가 너무 많아, 초기진압에 실패해 안타까운 인명피해와 엄청난 재산피해가 발생하는 일상을 어쩔 수 없이 손 놓고 있어야 할까? 사실 우리나라도 차고지증명제가 전혀 시행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화물차, 버스, 건설기계, 특수차량 등 일부 사업용 자동차의 차고지 확보가 의무화 돼있고, 제주도는 2007년부터 이 제도를 신규 중형차 이상 등록시에 한해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국민소득 증가와 더불어 자동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나타난 도시의 주차문제 정비를 개선하고자 일본의 사례를 참고삼아, 정부는 1989년, 1995년, 1997년, 2001년에 차고지증명제 도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4차례나 건의했지만 모두 무산되었다.

차량을 이용한 영업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는 저소득층과 화물차 운전자들에게 경제적 고통을 가중시키거나 저소득층의 자동차 보유를 원천적으로 제한하게 되고, 이미 도심 과밀화로 주차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이 제도로도 해결 불가능하다는 반대 의견이 강력하게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이 제도의 시행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때다. 지금까지 차고지증명제를 몰라서 도입하지 않은 게 아니다. 주차장도 없는데, 정부가 공간도 마련해 놓지도 않고 어디에 주차하라는 말인가라고 단속 및 이 제도의 시행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제도는 저소득층의 경제적 부담과 자동차산업의 위축을 초래하게 될 것이고,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허위신고와 위장전출 등의 부작용이 나올 가능성도 우려된다는 반대 목소리에 섣불리 시행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보다도 불법주차문제로 발생하는 국민적 갈등과 희생, 사회·경제적 비용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우리는 놓치고 있지 않는 가?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시행되려면, 최소 다섯 가지가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첫째, 지난 칼럼에서 상세히 제시했듯이 신축시에 세대당 주차대수 1대 이상의 기준으로 주차장법 개정 시행이 병행되어야 한다.

둘째, 공용주차장의 획기적 확보이다. 주차요금이 저렴한 공영주차장을 곳곳에 다수 확보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민간주차장을 함께 마련해 개인 주차공간이 없는 사람도 공영주차장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제도를 함께 시행해야 한다.

셋째,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의 지원방안 강구이다. 개인 차고지를 만드는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일정 기간의 공용주차장 이용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 등을 강구해야 한다.

넷째, 단계적 시행과 유예 적용이 필요하다. 친환경차, 경차, 중·대형차 등을 구분하지 않고, 제도 시행 이후 등록하는 차량 전체를 대상으로 하되, 시행 이전의 기존 차량은 적용을 유예하여, 폐차되고 신규취득이 발생하는 시점까지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신도시 등 특정지역을 대상으로 시범 도입후 공청회와 각계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하고, 시행착오와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합의가 선결되어야 한다.

개인이 애초부터 자신이 소유한 차 대수만큼 주차장을 확보했다면, 차고지증명제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제도이다.

국가가 개인의 주차장을 모두 만들어 줄 수 없다. 당연히 개인이 담당했어야 할 몫이다. 지금 우리는 차고지를 확보하지 않아도 건물을 짓도록 우리 서로가 묵인하고 인정해 준 주차장법의 원죄를 혹독하게 돌려받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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