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록 <우송대 교수>

작년 가을이었다. 주말에 잠깐, 정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중국을 다녀오마고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시끌벅적한 공항에 내리면서 중국은 현실이었다. 뿌연 하늘은 낡은 널빤지 천정처럼 내려앉아 먼지가 머리에 묻어날 것 같았다. APEC 기간의 찬란했던 창공은 사라지고 10년 전 베이징에서 만났던 뿌연 대기가 재현되고 있었다. 그런들 어떠한가. 저기 지하철 매표구 앞에서 좋은 웃음을 지으며 서있는 전정이 보였다. 그는 봄이면 꽃놀이, 가을이면 단풍놀이 함께 다니던 제자이자 마음을 알아주는 지기(知己)라 할 만한 중국 친구였다. 그것으로 베이징의 뿌연 하늘은 무죄였다.

듬직한 전정은 우리 일행을 난징따파이당(南京大排?)으로 이끌었다. 원래 남경이 고향인 전정은 북경요리보다 자신 있는 남경식 식당을 선택한 것이다. 전정을 처음 만난 것은 근무하는 대학의 야간 교양한국어 수업에서다. 자신감이 넘치는 친구였다. 대개 자신감이 넘치는 친구들은 가끔씩 정도를 벗어나기도 하는데 이 친구는 그 자신감을 조절할 수 있는 듬직한 친구였다. 그렇다고 해서 답답하게 반듯한 것만도 아니었다. 틈나면 여행이고 산책이고 하면서 여유를 활력적으로 즐기고 싶어 했다. 그 혈기에 힘을 빌어 나도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두루 다녔다. 그리고 이 여행에는 상숙이라고 하는 여자이름을 가졌지만 번듯한 남학생이며 전정의 절친한 친구도 함께 했었다. 이 친구도 사람 좋고 농담 좋아하는 일찍부터 아저씨 같은 넉넉한 분위기의 친구였다.

자금성을 관광하고 나니 상숙이가 나타났다. 근무하고 있던 상해로부터 내가 북경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방문을 한 것이다. 우리는 취엔지더(全聚德)로 가서 북경오리 요리로 저녁을 해결하고 나와 중남해를 걸으며 한국에서의 추억들을 되새겼다. 적당히 배를 꺼뜨리고 전정이 보아둔 저렴한 양꼬치 집에 들어가 백주를 곁들였다.

같은 베이징 하늘 아래이지만 관광지에서 만나는 중국과 이런 석탄 연기 자욱한 골목에서 만나는 중국은 다르다. 술이 여러 순배 돌고 여행의 피로감까지 더해질 즈음에는 모든 이질감에 푸근히 일체화되는 것을 느낀다. 어제고 오늘이고 꼬치 연기 자욱한 골목으로 일을 마친 보통의 사람들이 지나고 때론 술집에 들러 고단한 삶의 푸념들을 안주삼아 이 이과두주를 기울이는 풍경이 친숙해 지는 것이다. 그 삶의 이야기는 우리네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디에서나 요(要)는 밥이다. 먹고 살자는 무구한 밥에 대한 궁리가 말하게 하고 취하게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만난 이 친구들과 이제는 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낭만적이고 큰 걱정 없는 좋은 시절도 함께 했지만 고단한 삶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도 마냥 싫지만은 않다. 좋은 인연은 달고 짜고를 다 경험해봐야 그 깊은 맛을 숙성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일상 속으로 초대한 전정과 상숙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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