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 명예교수) 협치(協治:governance))는 원래 공공행정에서 민본성(民本性)을 강조하기 위하여 붙여진 용어이다. 공공행정은 국민이나 주민을 주인으로 보는 민주행정이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국민 및 주민은 위임자이고 행정기관이나 공무원은 수탁자의 관계라는 것을 분명하게 규정짓고자 하는 뜻이 담긴 용어이다. 민(民)이 주인의 지위에 있고 위임자라는 점에서 민익의 도모를 목표로 하는 행정은 수탁자인 행정기관이나 공무원 등이 아닌 위임자인 국민이나 주민의 뜻과 의견 및 이익 등에 부합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나 국민의 권익에 직결되는 공공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등의 정책관리 과정에 주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행정에 관한 전문성, 지식, 이론 등이 결여되거나 부족하다 하더라도 국민이나 주민은 주체적 지위에서 공공정책 과정에의 참여(주민참여)를 통하여 민본행정이 이루어지게 하여야 한다. 이러한 협치는 공공정책의 결정과 집행 및 여타 과정을 민과 관이 함께하여야 한다는(민관 협치) 취지에서 최근에 대두된 용어이다. 시대와 환경이 민익 위주로 발전하면서 이러한 취지와 철학은 공공행정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권에 까지 확대되고 일상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국가의 중대사나 국민의 권익에 직결되는 사안에 대하여 여야가 공동책임자로 역할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협치는 민본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는 점에서 정?행 등의 전개에 있어서 얼마든지 유의미한(significant) 지침적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정치는 정치적 이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권획득을 위하여 만들어진 정당을 모체로 하여 벌이는 활동이기에 조직끼리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한다는 생태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협(協)’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은 실제적으로 지난(至難)하다. 그래서 정치권은 이구동성으로 협치를 하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완전한 여야 협치는 선언적 의미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하여 시대적 환경적 요구인 협치를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이것이 정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정치권은 소속정당이나 당리당략이 아닌 주인인 국민을 보고 협치의 길을 개척하여야 한다는 것을 하늘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은 서둘러 이러한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구비하여야 한다. 하루빨리 민익의 수호자 및 대변자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겠다는 자세와 의지를 갖추어야 한다. 정당의 존재가치인 이념과 철학 등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하면서 국?민익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정치력을 키우고 가꾸어야 한다. ‘정치는 협상과 타협의 기술을 최고도로 발휘하여 국?민익의 극대화를 도모하는 종합예술’이라는 개념에 맞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a)투철한 공인의식, (b)합리적 사고, (c)본질을 볼 수 있는 눈, (d)정의구현의 의지, (e)대승적 자세 등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을 때 꽃을 피울 수 있다. 협치는 이러한 요소들(abcde)을 함수(기능)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요소들이 전제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무엇보다 공인의식이 투철하여야 한다. 사(私)를 멀리하고 공(公)을 바로 세워야 한다. 공을 목숨처럼 소중히 지켜야 한다. 공을 외면하고 자신의 입신영달이나 이익 등을 도모해서는 결코 아니 된다. 국가와 사회 및 국민 앞에 당리당략이나 사익 등을 개재시켜서는 아니 된다. 일거수일투족을 철두철미하게 공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공직자들은 합리적인 판단의 기수여야 한다. 모든 결정이나 집행 등이 이치에 맞고 적실하여야 한다. 미국을 세계 최강국이 되게 하는 원천적인 힘은 ‘미국은 합리성이 지배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공직자들은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 조직이나 부서의 존립근거에 맞는 것이 아니면 단호히 배격하는 본질지킴이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어야 한다. 공익이 아닌데 공익으로 포장하여 국민을 현혹시키는 정치인이나 공직자는 민의 대표나 공직자로서가 아니라 공공의 적으로 취급받게 하여야 한다. 앞의 요소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정치계나 공직사회는 정의의 화신이어야 한다. 정의는 시(是:옳음)와 비(非:그름)를 가려 시를 주장하고 수호하는 것을 말한다. 정의가 살아 있다면 협치는 물 흐르듯 펼쳐질 수 있다. 그리고 협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대승적인 자세가 필수적이다. 마음을 비우거나 내려놓는 허금(虛襟)과 하심(下心)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협치는 협치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이들 5가지 요소들이 공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공유하는 사고방식과 생활양식 등의 문화로 착근할 때 성공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협치는 한낱 구두선이나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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