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식 <수필가·충북도 비서관>

농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던 늙은 농부가 있었다. 하지만 소작농이었던 농부는 땅 한평 없이 동네 부잣집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 늙은 농부에게 마지막이자 유일한 재산이라곤 암망아지 한 마리뿐 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늙은 농부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유일한 재산이었던 암망아지가 그만 집을 뛰쳐나간 것이다. 마을 곳곳을 찾아다지고 망아지를 찾기 위해 백방을 수소문해 봤지만 허사였다.

국경선 부근 가난한 농촌 마을에 살았던 이 늙은 농부는 결국 망아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망아지가 국경선을 넘어 멀리 도망쳤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어찌나 낙심됐던지 식음을 전폐하고 하루하루 좌절감과 비애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이 늙은 농부에게 졸지 간 횡재가 찾아왔다. 멀리 떠난 줄로만 생각했던 그 암망아지가 어느 날 수컷 세 마리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농부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죽은 줄로만 여겼던 암망아지가 수컷 셋을 데리고 왔으니 이보다 더한 횡재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늙은 농부에게 불행은 그치지 않았다. 그의 막내 아들이 어느 날 망아지 등에 올라탔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그만 오른쪽 다리가 부러지는 불운의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농부는 속이 무척 상했다. 행운을 가져다준 망아지였다고 생각했는데 불운이 닥치고 보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나라에서는 젊은이들을 속히 징집하라는 임금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이웃나라와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늙은 농부의 막내아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막내아들이 오른쪽 다리를 다친 덕분에 징집에서 제외되는 특혜를 누리게 됐다.

이처럼 행운이 불행이 되고 불행이 행운이 된다고 해서 ‘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가 만들어졌다. ‘좋은 일이 꼭 좋다고만 할 수 없고, 나쁜 일이라고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는 세상 이치를 빗댄 말이다. 이 늙은 농부를 웃다 울게 한 망아지처럼 세상사 절대 선한 일도, 절대 나쁜 일도 없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언젠가 둘째 녀석이 아침 일찍 대구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어찌 어찌 하다 그만 막차를 놓치고 만 것이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부모 된 입장으로 걱정과 염려가 안 될 수 없었다. 아내가 가까운 찜질방에 들어가자고 다음날 아침 첫 기차를 타고 오라고 했을 뿐 달리 손쓸 방도가 없었다.

그런데 둘째 녀석이 기발한 상황대처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페이스북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올렸더니 단박에 이 소식을 접한 지인들이 도움의 손길을 뻗쳐 온 것이다.

대구까지 자동차로 데리고 오겠다는 형도 있었고, 그 밤에 KTX 고속열차를 인터넷으로 예매해준 고마운 형도 있었으며 또 오송역에 도착하면 집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선뜻 나선 형도 있었다.

그리하여 둘째 녀석은 KTX 고속열차를 올라타고 오송역에서 내려 함께 인라인 동호회에 소속된 형의 도움을 받아 자동차를 타고 집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둘째 녀석이 집에 무사히 도착한 것은 새벽녘에 잠이 깨어 제방에 들어가 잠자고 있는 얼굴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 뜨고 일어나 간밤에 있었던 저간의 사정을 아내에게 이야기하는데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둘째 녀석이 평소 처신을 어떻게 했는지 미뤄 집작되지만 그 덕분에 염려가 기쁨으로 뒤바뀌고 작지만 행복한 경험을 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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