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두름손이는 오늘도 바스락 종이에 싸여 있는 사탕 다섯 알을 주머니에 넣고 나선다. 직장엘 가는 거다. 이른 아침밥만 먹으면 토요일 일요일만 빼고 나가는 곳이 있으니 그에게는 직장이다. 하지만 보수 없는 직장이다. 그래도 지역을 위해 봉사해 감사하다는 지서장의 감사장도 있고, 또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힘써주어 고맙다는 학교장(초등학교)의 감사장도 있다. 차량의 왕래가 제법 빈번한 지역의 초등학교 앞길에서 근 5년여 동안이나 등하교시간에 교문 앞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교통정리를 해준 대까(代價)이다.

그는 이 일을 시작할 때 어떤 보수나 치하를 바라고 한 게 아니다. 딱히 할 만한 일이 없었다. 도회지에서 공직을 마감하고 무위도식하며 무료히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을 때 시골의 막내가, “사람 버리겄어유. 안 되겄어유. 시골로 내려가야겄어유. 시골서 아무것두 안 하셔두 여기보단 나유.” 하더니 부랴부랴 그길로 제가 타고 온 트럭에 대강대강 그의 옷가지만을 서둘러 싣고는 막무가내로 그이까지 떠밀어 태우곤 시골로 내려왔다.

그리곤 보름 후에 막내는 제 큰형수까지 납치하다시피 해 데리고 왔는데, 그 바람에 군에서 제대를 하고 다니던 대학복학을 기다리고 있던 막내아들은 아파트에 홀로 남게 됐다. “다 큰 놈은 저 혼자 끓여먹고 살 수 있어유. 이것두 인생사 훈련이유.” 막내의 설레발이었다. 이래서 얼결에 막내가 마련해준 동네 빈집에 들어가 살게 됐는데 정말로 막내 말따나 오길 잘했다. 근 40여년 만에 정식으로 고향에 돌아왔으니 어릴 적 친구들은 자신처럼 다 늙어 있으나 반가운 얼굴들이고 옛정은 그대로 살아 있을 뿐 아니라 낯익은 산과 들이 휘둘러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무료했던 도회지생활을 씻어주었다.

게다가 그간의 타향생활과 직장생활에서 얻은 지식과 지혜를 농사일 대신으로 동네사람들과 나누다보니 그는 어느덧 동네에서 ‘두름손이’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얻었다. “장식이 큰형님 말여 배운 것만큼이나 두루두루 많이 알아서 무슨 일이든 처리해주는 솜씨가 남달라. 그야말로 두름손이야 두름손!” ‘두름손’이란 ‘일을 잘 처리해 주는 솜씨’ 그러니까 ‘무슨 일이든 주선하거나 변통을 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그런 그가 동네사람들로부터 한숨 섞인 소리를 듣는다. “읍내 초등학교 교문앞길에서 이학년 학생이 또 차에 치었댜. 벌써 몇 번짼지 모르겄네.” “교통정리 하는 선생님과 육학년 학생이 나오기 전에 그랬다는구먼. 붙백이루 맡아서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말여!” 이 소리를 듣자 두름손이는 이튿날부터 자진해서 학교정문앞길로 나선 것이다. 하여 이것이 내 직장이다 하고 아이들을 돌보기가 오늘에 이르렀다.

그는 1주일 전서부터 사탕 다섯 개를 주머니에 넣고 나온다. 다섯 아이에게 주기 위해서다. 왜 아이들이 다섯뿐이랴 마는 등하교하는 아이들마다 다 줄 수는 없고, 인근 성당에서 부모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길러주고 학교까지 보내주고 있는데 이런 아이들이 전 학년을 통해 십 수 명에 이르지만 이 중 3학년 또 그 중에도 또래 넷과 어울려 다니는 사동이까지 해서 다섯 개이다. 사동인 붙임성이 좋은 아이다. 늘 명랑하고 인사성이 밝다. 매일 두 번을 만나는데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 하고 불러놓고는 ‘해해’ 하고 싱겁게 웃어 보이면서 앞서 간 네 애들에게로 뛰어간다. 하도 기특해서 사탕을 하나씩 주기로 했는데 처음엔 사탕을 받으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할아버지!” 불러놓고는 잠시 뜸을 들이곤 고개를 숙이고 “고맙습니다!” 하는 거였다.

그런데 오늘, 사탕을 주려고 하는데 사동이가 “하나만 더 줘요!” 하는 게 아닌가. 이 느닷없는 말에 두름손이는 사동일 쳐다보았다. “친구 하나가 더 있는데요!” 하고는 뛰어가더니 저만한 아이를 데리고 온다. 그는 난감했다. “저기…말여…사탕이 없는데, 내일부터 하나 더 가지고 올게.” 그랬는데 사동인 한번 씨익 웃어 보이더니 그 아이와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가면서 제 사탕을 주머니에서 꺼내 그 아이에게 주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며칠 후 하교하는 날, 사동이가 혼자 남더니 주뼛주뼛하기만 하고 말을 꺼내지 못한다. “왜, 뭐 할 말 있어?” 그랬는데도 이번엔 울상이 되어 땅만 쳐다본다. “뭐야, 말해봐!” 그러자 사동인 울먹울먹 대더니 마침내 말문을 터뜨린다. “우리 엄마 찾아줘요!” “엄마아?” 얼결에 그의 되묻는 말이 튀어나오자 사동인 그대로 달아나버리고 만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그는 ‘우리 엄마?, 우리 엄마?’ 하고 되뇐다. 제 또래친구 모두의 엄마를 찾아달라는 건지, 사동이 제 엄마를 찾아달라는 건지. 여하튼 양쪽 다 답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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