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택 전 제천교육장

(최성택 전 제천교육장) 청소년 시절 가을이면 가장 많이 듣던 말이 ‘등화가친의 계절’ 로 사계절 중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이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기에 독서를 권장한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등화가친’ 이나 ‘독서의 계절’ 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가을이 독서에 좋다는 말은 당나라의 문학자이며 사상가인 한유(768∼824)가 그 아들에게 독서를 권하기 위해 지어 보낸 시 ‘부독서 성남’에서 가을은 등불을 가까이 할 만 한 때라고 노래 한 시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는 출판된 책도 많고 책 읽을 장소를 비롯한 여건이 좋아졌는데도 독서 하는 사람과 시간은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 겨우 독서라고 해야 입시와 취업을 위한 것이 고작이고 문화와 교양을 위한 독서는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책이나 글을 백번 읽으면 그 뜻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이 말은 삼국지 위서13권 ‘종요화흠왕랑전’ 에 배송지가 주(注)로 덧붙인 동우(董遇)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백번이란 그 뜻을 알 수 있을 때까지 되풀이해서 읽는다는 것을 나타내며 비단 독서에만 국한 되는 말이 아니라 무엇이든 끈기를 가지고 노력하면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동우는 후한 말기 헌제 때부터 삼국시대 위나라 명제(明帝)조예 때까지 활동했던 대학자이며 ‘노자’나 ‘좌전’에 주(注)를 달았는데 특히 ‘좌전’에 대한 주석이 널리 알려져 당(唐)시대까지 폭 넓게 읽혀졌다. 집안이 가난하여 일을 하면서 책을 손에서 떼지 않고 부지런히 공부하여 황문시랑이란 벼슬에 올라 임금님의 글공부 상대가 될 만큼 되었으나 조조에게 의심을 받아 한직으로 쫓겨났다. 동우의 학덕을 흠모하여 그에게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선뜻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배움을 청하자 그는 “마땅히 먼저 백번을 읽어야 한다. 책을 백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 (必當先讀百遍, 讀書百遍其義自見)”며 사양했다. 그 사람이 “책 읽을 겨를이 없다”며 다시 가르침을 청하자 동우는 “세 가지 여가만 있으면 책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고 답했다. “세 가지 여가(三餘)가 무엇인가”를 묻자 그는 “겨울은 한 해의 여가이고, 밤은 하루의 여가이고, 오랫동안 계속해 내리는 비는 한 때의 여가” 라고 대답했다. 곧 다른 일이 없는 그러한 때를 여분으로 삼아 쉬지 말고 학문에 정진하라는 말이다.

윤기(1741∼1826)가 소일설(消日說)에 말하기를 “사람들은 긴 날을 아무 하는 일 없이 보낸다” 고 했다. 먹고 입는 일에만 몰두하고 고만고만한 부류와 어울려 허랑방탕하게 한 해가 다 가도록 멋대로 논다고 했다.

당시에도 유행하는 말 쓰기를 즐겼고 잡기와 남의 흉보는 일, 조정의 정치 얘기와 화류계나 노름판 얘기 등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스스로 이것을 극락세계라 하고 토방에서 형설의 노력을 하는 사람을 비웃는다고 했다. 그리고 “무위도식 하다 다 늙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눈물 흘리면서 소일하는 근심이 없기를 면하겠느냐” 고 경계했다.

요즈음 사람들은 여가 시간에 꼭하지 않아도 될 일에 시간을 빼앗길 때가 많다. 눈 뜨면 TV 를 켜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스마트폰을 뒤적이면서 잡다한 소식을 정보라고 하고 또 인간관계 폭을 넓힌다고 모여 남의 뒷말이나 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모습이다. 종교인들도 자기가 믿는 종교의 경전(성경이나 불경) 을 읽으면 수면제 역할을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오죽하면 백수과로사(白手過勞死-뚜렷하게 할 일 없는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다 과로해서 죽는다)는 말까지 생겼을까?

이런 시간들을 ‘삼여’로 삼아 목표를 갖고 공부하거나 일에 매진 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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