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35년 전 거제도에서의 일이다(그러고 보니 나도 꽤 살았다). 배를 타고 들어가 육로로 나오는 여정이었다. 장승포(고래로 유명한 울산의 장생포가 아니다)로 들어가서 과거에 이승만이 묵었다는 쇠락했지만 중정(中庭: 가운데 정원)의 정취가 있는 일본식 여관에 묵었다. 아마도 허물 예정인지 수리도 안 하는 느낌이었다(몇 년 전 찾아보았는데 사라졌다). 창틀의 나무 조각문양은 이곳저곳에서 망가지고 있었지만 매우 정교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버너를 들고 다니며 밥을 해먹었다. 볶음고추장에 밥 비벼먹는 것이 거의 전부였지만, 쌀이 줄어 배낭이 가벼워지는 것은 여행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아침을 해먹고는 바다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해금강을 찾았다.

그곳만 하더라도 관광지인지라 당시에도 제법 북적였다. 바위섬을 보여주는 관광선도 있었고, 호텔이라는 이름의 아담한 숙박시설도 있었다. 해질 무렵, 여관에는 들어가기 싫어 가겟방에 앉아있는데, 낮에 본 관광선의 뱃사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눈에 띄는 파마머리여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제안했다. ‘내, 술은 살 테니 잠만 재워주쇼’라고. 나보다는 나이가 들어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년은 아닌 그는 쉽게 응낙했다. 그래서 나는 여관비의 반도 안 되는 술과 안주를 사서 언덕배기에 있는 그의 집으로 향했다.

재밌는 밤이었다. 남동생을 하나 데리고 사는 그는, 아버지가 물려준 배가 세척이나 있었지만 노름으로 다 날리고 이제는 남 밑에서 뱃일을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가까이서 보여주는데, 왼손을 칼로 자르다만 상처가 있었다. 도박을 끊으려고 부엌칼로 내리쳤지만 상처만 남았다는 것이었다. 부인이 부산으로 도망을 갔고, 찾아내 죽이려했지만 부질없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밤새 술맛이 기가 막혔다. 칼을 안주로 먹는 술 맛이 어떤지 그때 알았다.

아침에 떠나려 하는데, 골목에서 오른손에는 댓병짜리 소주를 들고 왼손으로는 오징어땅콩 과자를 널뛰면서 오는 것 아닌가. 가겠다는 나를 한사코 말리면서, 어제는 얻어먹었으니 오늘은 내 술도 한 잔 먹고 가라는 것이었다. 대청마루에서 알루미늄 국그릇에 석 잔을 먹고서야 일어난 것 같다. 당시 통영으로 나가는 길은 포장이 안 되어있었는데, 술은 취하지 머리는 천장에 부딪히지 바람은 무덥지, 참으로 인상적인 오전이었다. 그래도, 내가 본 해안풍경으로는 최고였다. 물결마다 부서지는 그 찬란한 햇살은 잊히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그런 과장된 감정으로 스무 살의 아침바다를 맞이하고 싶을 뿐이다.

그의 칼은 다 닳았는지, 그의 손은 다 나았는지, 그의 마음은 다 아물었는지 궁금하다. 그곳에서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의 착한 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무엇을 했을까? 그의 말로는 부인의 배를 찔렀다고 했는데, 그녀는 어떻게 지낼까?

그때 나는 사랑의 상처를 그 영롱한 바다로 말없이 던져버렸는지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도 가슴이 아리지 않다. 그는 처음 보는 나그네에게 아내의 배를 찔렀다는 상상을 실어 보내 스스로를 치유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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