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희 <수필가·청주시 오근장동장>

우연히 사무실 신문 보관함에 꽂혀있는 책에 눈길이 갔다.

꺼내 보니 작년에 청주시 평생학습관에서 만든 책으로 ‘문해! 삶의 등불이다’라는 특이한 제목이다. 궁금해 읽어 보니 글을 모르는 비문해인들에게 한글을 쓸 수 있도록 가르치고 그 결과물로 엮은 책이었다.

특별히 이름 있는 사람들의 작품은 아니지만 읽는 내내 감동 또 감동이었다. ‘문해지도사’라는 생소한 직업을 여기서 처음 알았다.

한글을 모르는 분들에게 글을 가르쳐서 읽고 쓸 수 있도록 지도하는 직업이란다. 책머리에는 문해지도사들의 소감문도 적혀 있다.

팔구십 세의 어른들을 가르치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지만 보람 된 일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ㄱ’자를 가르치기 위해 손을 몇 번 잡아 줘가며 반복 또 반복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보람을 느꼈다는 어느 문해지도사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만 같다. 난생처음 딸에게 편지를 쓰고 딸과 함께 펑펑 울기도 했다는 내용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많은 어르신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배움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시대를 사셨다.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다 결혼해서는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로 평생을, 그야말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채 불편하게 살았다.

일년 동안 배운 한글로 시를 지어 시화전을 하였다니 그 기쁨과 보람이 얼마나 컸을까 감히 짐작할 수도 없으리라.

한 분 한 분 쓴 시들을 읽으며 가슴 뭉클해지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

가끔 받침이 틀리기도, 줄이 비뚤어지기도 했지만 모두가 한글 공부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행복했단다.

90여분의 시 한편, 한편에는 그분들의 지나온 삶과, 지금 살고 있는 인생에 대한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 중 하나를 적어본다. 제목은 ‘한글 공부’다.

가뭄에 고추밭에 율무밭이 / 타들어간다 풀도 뽑아야 하고 / 물도 퍼다주어야 하는데 / 전화가 울린다 / 한글 선생님 전화다 / 한글 공부하는 날이란다 / 아이고 깜박 잊어버렸네 / 몸도 바쁘고 할 일은 많고 / 공부도 해야 하고 허리도 아프고 / 다리도 아프고 그래도 / 공부하는 시간이 참 좋다 / 공부하다 보면 밭에 가기 싫다.

그분들 평균 연령이 80세가 넘는다. 그러나 공부하는 열정만큼은 나이를 무색하게 했다. 글을 배우고 나니 은행에 가서 신청서도 쓸 수 있고, 시내버스 간판도 읽을 수 있어 사는 것이 너무 행복하단다.

늦깎이 학생들의 공부에 내가 유독 더 감동하고 공감하는 것은 비슷한 경험이 있어 그런지도 모른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하며 지냈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갈망은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우여곡절 끝에 친구들보다 2년이나 늦은 늦깎이 중학생이 되어 열심히 공부를 해 상급학교까지 진학해 지금에 이르렀다.

연세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문해학당 할머니들이 배우고 또 배워서 편지도 쓰고 시도 쓰는 것은 그만큼 문해에 대한 절실함과 삶에 대한 행복함이 컸던 것처럼 나도 그랬다.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프로그램이 지속돼 더 많은 어머니의 행복한 삶이 이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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