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기온이 뚝 떨어진 늦가을 백마산에서 산안개가 내려오고 있다. 산허리를 천천히 휘돌아 거대한 빙하가 녹아내리듯 흘러내린다. 높은 산들이 흰 띠를 두르는가 싶더니 낮은 산은 이미 잠겨 보이지 않는다. 산안개는 더 천천히 펴올라 하늘마저 채워나간다. 서산 위로 해마저 숨고 붉은 수채화 붓이 스쳐간 듯 물든 저녁노을도 이내 산안개에 묻힌다. 기러기떼가 산안개에 날개를 적시며 날아간다. 이제 푸른 하늘이 없다. 산마을은 적요에 빠진다. 백마산 아랫동네 노송리의 저녁 풍경이다.

그 누구도 손 댈 수 없는 / 저 고요한 구름바다 // 신들도 그림자를 접고 / 지음(知音)을 거두었구나! // 그 누구도 / 발자국 남길 수 없으니 / 하늘에는 길이 없다 // 길이 없으니 / 길을 잃지 않아도 된다 // 자신이 간 길에 대한 후회와 /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도 없다 // 길 없는 하늘! / 오늘 문득 그대 그리워 / 서역 안탑(雁塔)으로 / 기러기떼 보낸다 // 바람도 없이 꽃잎이 지는데 / 언젠가 가야한다는 저 길 / 운무 또 내려, 보이지 않는구나 (졸시‘길 없는 하늘’)

기온이 뚝 떨어진 백마산 아랫동네 논밭은 가을걷이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탈곡이 끝난 논에는 볏짚이 공룡알로 변하여 나뒹군다. 들깨는 이미 자루 속으로 들어갔고 서리 맞은 팥과 콩을 두드리고 무를 뽑아내어 갈무리 중이다. 천성이 게으른 나는 아직 마늘을 흙속에 넣지 못했다. 우리 동네 마늘 재배기술자 경수씨에게 자문을 구할 참이다.

단풍 들어 떨어지는 낙엽에게 쓸쓸해지는 가슴을 묻고 있을 때 찾아오는 것이 기러기이다. 그런데 우리가 찾아오는 기러기에게 만남의 반가움보다는 예사 이별의 길을 묻는다.

분명 그들은 바이칼 호수의 추운 겨울을 피하여 따뜻한 우리 품으로 드는데 왜 우리는 이별의 정한을 떠올리는 것일까.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 왔을 때하고 완전 딴판이다. 봄에 오는 것과 가을에 오는 것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정서가 다른 때문일 터이다. 어쩌든지 서늘해진 가을 하늘에서 기러기를 바라보다 보면 우리 내면에서 그리움 같이 생긴 아련한 정감이 묻어난다. 여름이 지나간 가을 하늘에 기러기가 없다면 얼마나 황량할까.

올 가을 연못에 솟대 다섯 대를 세웠다. 그 중의 한 솟대나무는 방향을 우리 집으로 향하게 동남쪽으로 세웠다. 모두 기러기 머리를 한민족의 본향(本鄕)인 북쪽 바이칼 호수로 향하게 하였으니 다시 돌아올 곳을 가리키는 솟대 하나 쯤 있으면 해서였다. 그리고 그 솟대나무는 그림자처럼 어두운 색으로 칠하여 무의식 세계를 휘돌아오는 상상력을 암묵하였다.

기러기는 따뜻한 곳을 찾아 40,000km를 날아가는 장거리 여행자이다. V자 대형을 그리는 이 머나먼 순례자들은 그 중심에 리더를 세운다. 그는 끝임 없는 날갯짓으로 기류에 양력을 만들어 넣는다. 뒤따르는 기러기들은 그 덕택에 70% 정도의 에너지를 투자하며 무리와 함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먼 길을 날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울음소리를 낸다. 마치 군인들의 군가처럼 행군 도중에 힘을 생성해 내려는 까닭이다. 이 행렬이 이어지다가 한 마리라도 낙오자가 생기면 꼭 두 세 마리의 동료가 이탈하여 낙오자와 계절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전통혼례 때 신랑은 나무기러기를 향해 두 번 절함으로써 기러기처럼 금실 좋은 부부가 되겠다는 전안지례(奠雁之禮)를 한다.

1952년 박목월 시인이 38살 때였다. 그는 제자인 여대생과 사랑에 빠졌다. 가정과 국문학 교수와 명예도 내동댕이치고 제주도로 사라졌다. 수배 끝에 이들을 찾아낸 부인은 여학생의 머리채를 휘감는 대신 “힘들고 어렵지 않느냐”며 두 사람의 내복과 돈 봉투를 떨어뜨리고 서울로 올라갔다. 이 소문을 들은 부친의 손에 여학생은 끌려가버렸다. 박목월의 제주시 관덕정 동화여관의 6개월 사랑은 막을 내렸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 바람이 서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 한 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박목월은 이별의 노래를 부르며 부둣가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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