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기관장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조직이 죽고 사는 것은 그 조직을 어떻게 끌고 가느냐는 기관장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우리는 흔히 기관장 리더십을 평가할 때 용장(勇將)이냐, 지장(智將)이냐. 덕장(德將)이냐를 따진다. 물론 이 세가지 모두를 갖춘 기관장이라면 더 할 나위 없다. 굳이 그중 으뜸을 꼽는다면 덕장이 아닐까 싶다. 용감한 자나 지혜로운 자도 덕을 가진 자에게는 못 미치기 때문이다.

기관장은 조직의 얼굴로서 조직을 대표하고 직원들을 지휘, 감독, 통솔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그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 달성을 위해 독려하고 채근하는 자리다. 그러면서 직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줄 알고 부드럽게 감싸 안아 줌으로써 출근하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는 수장이어야 한다.

이같은 기관장의 역할은 일사불란한 명령체계를 요구하는 조직에선 더욱 강조된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깨진 유리창 하나가 범죄를 일으킨다는 이론이다. 강력범죄를 5년 만에 75%나 줄인 미국 뉴욕시의 일화는 대표적인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아닐 수 없다. 1990년대 뉴욕은 범죄도시라는 오명을 썼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범죄가 발생했고 특히 지하철은 강력범죄의 온상이었다.

1994년 시장에 당선된 줄리아나 시장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러나 그는 강경책이 아닌 ‘깨진 유리창 효과’를 기대하며 깨끗한 거리 조성에 나선다. 거리 곳곳의 낙서를 지우고 길에 쓰레기 통을 치우는데 앞장섰다. 그 결과 범죄는 크게 줄었고 뉴욕은 안전한 도시로 거듭났다. 지도자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기관장의 자세와 처세에 따라 직원들은 울고 웃는다. 이는 권력기관일수록 더 하다. 기관장이 직원들이나 지역사회에 고압적이면 직원들은 직원들대로, 지역주민은 지역주민들대로 힘들다.

몇 년 전 충북경찰청장으로 근무한 모 치안감은 당시 정권 실세와의 친분을 내세워 위세를 부렸다. 부임하자마자 정보수집을 강화한다며 ‘정보분실’이라는 별도 조직을 만드는가 하면 도내 수급기관장회의도 불참하며 그들을 깔아 뭉갰다.

폭탄주 두 잔을 한 번에 연달아 마시는 ‘쌍끌이’라는 주법을 만들어 술 못하는 부하직원에게 억지로 마시도록 하고 술을 이기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는 희열을 느꼈다.

한 총경은 술에 취해 넘어지면서 식탁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또 모 신문에 자신의 인터뷰 기사중 수사권 관련 부분이 누락되자 담당계장을 다른 부서로 경질하는 등 무소불위의 칼을 휘둘렀다.

또 다른 청장은 자신의 집무실을 누군가 도청하고 있다며 외부업체를 동원해 샅샅이 뒤지는가 하면 결재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안용지에 ‘×발’이라고 쓰는 기이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반면 권위주의를 빼고 직원들을 격의 없이 대해 고향 충북을 떠난 지가 한참 지났는데도 지금도 같이 일하고 싶은 상관으로 떠받쳐지고 있는 청장도 있다.

조직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는 기관장의 몫이다. 현 박재진 청장은 파격적인 업무 스타일로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는 부속실을 대폭 축소시켰다. 통상 치안감 청장들에게 배치되는 전속 수행원(경감 또는 경위급)을 없애고 경장 2명만 두고 있다. 집무실에 다양한 차를 준비해 놓고 직접 손님한테 제공하거나 직원들은 본인이 타서 마시도록 하고 있다. 형식적 보고나 단순히 글을 읽는 수준의 대면결재 방식도 생략했다. 다시 말해 쓸데 없는 일을 하지 말라는 거다. 획기적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박 청장은 욕심이 앞섰는지 주로 과장들만을 상대하며 결재 등 업무를 처리하는 독특한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계장들은 인사·경리 등 지극히 제한된 부서들만 집무실 출입이 가능하다. 달리 말하면 간부들 몇몇을 제외한 직원들은 가까이서 청장 얼굴을 보기가 힘들 정도다.

대면결재를 하면서 직원들의 고충과 발전적인 의견을 들어야 하는데도 문턱이 너무 높다는 볼멘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기관장 경험이 처음인 박 청장은 곧 있을 정기인사에서 자리를 옮길 것으로 예상된다. 어느 기관, 부서에 가든 충북청 근무를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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