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재홍 청주시 경제투자실장

(반재홍 청주시 경제투자실장)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지적을 가끔 듣는다. 생각 없이 그때그때 시키는 대로만 하는 기계적인 집단이란 비하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이 말이 맞는가에 대해서 쓸데없는 논쟁을 벌일 생각은 없다.

다만 그런 말을 쉽게 인용하는 분들에게 공무원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지난 33년여 간 지방행정의 현장에서 경험해 온 입장에서 풀어보는 것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정리해 본다.

행정은 글자그대로 정(政)을 행(行)하는 것이다. 정(政)은 국민 또는 시민이 그때그때 원하는 것일 수도 있고 결정한 것일 수도 있다. 민주주의와 지방자치는 시민들의 이러한 뜻을 대신 실행해 줄 민선 시장과 의원을 선출해 보낸다.

민선 시장은 직업공무원으로 이뤄진 행정부의 수장이 돼 24시간 거미줄같이 얽혀있고, 합죽선의 부채살과 같이 나눠진 조직을 통솔하며 임기내내 공무원들을 통해서 시민들의 뜻을 실행하게 된다.

공조직을 얼마나 잘 지휘하느냐 여부는 공약의 실천율이 얼마나 되고, 국비를 얼마나 많이 확보해서 부족한 재원을 보충해가며 숙원사업들을 해결하느냐 등등 많은 면에서 평가받는다.

또 하나 다수의 의원들을 통해서 시민들은 지역별 분야별로 더 세밀한 요구들을 행정부에 요구한다. 의원들은 조례제정권과 예산 승인권을 통해 그러한 주민의 뜻이 제도화되고 재정적으로 뒷받침되도록 결정한다.

이러한 일련의 절차와 과정을 거치면 그 다음이 우리 공무원들의 몫이다. 법제화되고 재정까지 준비됐으니 결정된 사업들을 효율적으로 실행해 시민들이 그 혜택과 결과를 실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게으르거나 전문지식이나 지혜가 부족해서 그 사업들이 지연되거나 잘못된 결과를 낳는다면 공무원의 책임이다. 그래서 필자는 후배공무원들에게 우리는 know-what(노훴)을 다루는 게 아니라 know-how(노하우)를 실행하는 집단이라고 힘줘 말하고 싶다.

민선시장과 시의회를 통해 결정된 사항 심지어 전문가집단과 언론, NGO(비정부인단체) 등에 의해서 나오는 의견을 참고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고, 이 방법들이 결정되면 가장 신속하게 그 방법을 통해서 바라는 성과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무엇을 할 것인가, 왜 해야 하는 가를 논하는 것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훨씬 어렵다. 말로 지적하기는 쉽다.

그런데 ‘방법이 무엇이냐’고 반문하면 전문가들도 현실과 동떨어지게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점을 지적하기는 쉽다. 그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이 어려운 것이다.

공무원조직에 우수한 인재가 많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문지식과 경험이 많다고 방법을 잘 찾아내는 게 아니다. 지혜로운 공무원이야말로 그 방법을 기막히게 찾아낸다. 방법도 상책, 중책, 하책이 있다.

이해가 상충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양쪽이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상책이다. 한쪽만 만족시키는 방법은 불가피하더라도 중책이다. 방법은 찾았는데 시행착오가 많고 또 다른 문제를 악순환 시킨다면 하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무엇을 했어야 할 것이냐를 놓고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공무원들의 영혼에서 나오는 진정한 목소리를 듣고자한다면 사석에서는 밤새도록 들을 수도 있다. 그 정도는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적인 무대에선 얼마나 현실적인 방법을 가장 잘 만들었느냐를 놓고 공무원 집단을 평가해 주기 바란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