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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까치내의 추억<정민영>
동양칼럼-까치내의 추억<정민영>
  • 정민영
  • 승인 2017.11.08 21: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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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 서원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정민영 서원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까치내는 팔결에서 흘러 내려오는 금강의 지류 미호천과 청주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흐르는 무심천이 만나는 합수머리다. 근처에서 물줄기가 가장 크고 주변에 넓은 벌판이 펼쳐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학생들의 소풍지로 인기 있던 곳이어서 많은 시민들이 학창시절의 추억과 낭만을 묻어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접근성이 좋아져서 주민들이 휴식도 하고 운동도 즐기는 장소가 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으로 오는 것은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차도가 나기 전에는 무심천변의 오솔길을 따라 한나절을 걸어야만 겨우 도달할 수 있는 거리라서 큰마음을 먹지 않으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예전의 어린이들에게는 말로만 듣고 가기 힘든 곳으로 인식되어 막연히 동경만 하던 곳이다.

나는 물줄기라곤 우기에만 잠깐 흐르다 말라버리는 실개천이 전부인 산골 마을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에 청주로 유학을 와서는 지금까지 내가 가까이에서 본 가장 큰 물줄기인 무심천을 따라 올라가면 무엇을 만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담임선생님께서 과제를 다 외운 학생들을 일찍 집에 보내 주는 바람에 드디어 교실로부터 탈출할 기회가 찾아왔다. 이곳 지리에 어두운 나는 몇몇 친구들을 꼬드겨 무심천 서쪽 둑 위로 난 오솔길을 따라 북서쪽으로 올라갔다. 그것이 그해 시골뜨기인 나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외출이었다. 한나절 걸어서 도착하여 해질 무렵 주린 배를 움켜쥐고 겨우 돌아왔던 그곳이 바로 까치내다. 허둥지둥 다녀오느라고 언뜻 보고 만 곳이지만, 말로만 듣던 넓은 하천 까치내의 물결은 산골짜기에서 자란 시골뜨기에게 큰 감동을 준 경이로운 세상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뒤 고교 졸업반이 되었을 때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교련 과목을 가르칠 때여서 일 년에 한 번 교외로 행군하는 날이 있었다. 소풍을 대신하는 행사였고 우리는 그것을 원탑 교실로부터의 탈출이라고 표현했다. 교련복을 입은 우리는 무거운 소총을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내수동 고개를 넘어 내려와서 무심천변을 따라 행군을 했다. 대입 준비 핑계로 음악 미술 시간에 영어 수학 자율학습을 시키던 시절이었으니 행군이 힘겨워도 우리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일사불란한 행군의 대열도 잘 훈련된 특수부대 못지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점심때쯤 도착하여 수백 명이 함께 뒹굴며 각개전투와 총검술 훈련 끝에 기마전으로 마무리하고 김밥을 까먹던 고교 시절의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 까치내다.

유년시절에는 아무 생각 없이 다녀왔지만, 고교시절에는 그래도 머리가 굵어졌다고 까치내라는 이름의 유래에 주목했다. 하천의 이름이 날짐승 까치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때 까치내 주변 마을에 살던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까치내의 전설이다. 까치내의 한자 지명은 작천(鵲川)이다. 이는 까치를 조류인 날짐승 까치로 해석한 결과다. 옛날 이곳에 있던 외딴 주막의 주모가 과거 길에 갑자기 몸져누운 서생을 구하기 위해 약으로 쓰려고 하얀 까치를 생포했다고 한다. 바로 그때 서생과 원한 관계에 있던 호랑이가 나타나 이를 방해하자 한 포수가 호랑이를 죽이고 서생의 목숨을 구해주어 장원급제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곳을 까치내[鵲川]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다.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실제로 이곳은 까치들이 자주 모여드는 곳이라고 한다.

대학에서 국어학을 전공하면서부터는 까치내에 얽힌 전설이 지명의 유래를 설명하기에는 근거가 박약하고 비논리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까치내를 ‘아치내’의 변형으로 해석해 보기도 하고 ‘가지내’의 변형으로 해석해 보기도 했다. 전자는 작은 내를 뜻하는 ‘아치내’가 음상이 비슷한 까치내로 변했다고 보는 것이다. 중세국어 문헌의 ‘아?’이나 ‘아?-’가 작다는 의미로 짐작되기에 이런 추정이 가능하지만, 음운변화 과정을 설명해 내기가 쉽지 않고 실제 까치내의 규모가 작은 물줄기가 아니라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후자는 까치내의 ‘까치’를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어 지명 ‘가지내(加知奈)’의 ‘가지’와 같은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이때의 ‘가지내’는 ‘지천(枝川)’을 뜻한다. 합수머리인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물줄기가 갈라진 형상이므로 생긴 어형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의 높은 산으로 올라가 보았더니 실제로 합수머리인 까치내에서 오창 쪽과 청주 쪽으로 갈라진 모양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때가 바로 이곳 까치내에 관한 지명 명명(命名)의 유연성(有緣性)과 조상들의 슬기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까치내를 ‘가지내’의 변형으로 믿고 있다.

나는 지금도 종종 까치내에 가곤 한다. 학창시절과 달리 여유로운 마음으로 떠나는 나의 까치내행은 언제나 무한한 행복감을 가져다 준다. 자전거를 타고 새벽을 가르노라면 시골뜨기 어린이의 황홀한 첫 나들이 기억이 아련히 떠올라 미소를 머금게 된다. 추억에 잠긴 채 작천보 물결 앞에 서서 옛일을 회상하노라면, 또 누군가 흘러가는 저 물결 속에 나처럼 추억을 묻어두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 소슬바람에 서걱거리는 갈대밭이 가슴속을 뒤흔들어 놓을 때면, 애잔한 그리움이 사무쳐 한없이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까치내는 그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학창시절 추억의 반추로 동질화되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 정겨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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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ans 2017-11-14 13:40:08
까치내 그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을 추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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