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 중부대 교수

(최태호 중부대 교수) 40년 전에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부친이 교사였던 관계로 교사가 제일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 의대에 몇 번 떨어진 경험도 있다. 어려서부터 공부는 좀 하는 편이라 선친께서는 의대에 진학하라고 항상 말씀하였다. 그래서 의대에 꼭 가야 하는 것으로만 알고 시험을 봤으나 예비고사(당시에는 예비고사라고 했고, 그 후 학력고사로 바뀌었다) 성적도 썩 좋지는 않았고, 본고사 중 수학은 정말 어려웠다. 국어와 영어는 거의 다 맞았지만 수학은 젬병(?)이라 거의 바닥을 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학교에서 보는 시험은 그럭저럭 볼 수 있지만(범위가 정해져 있으니) 본고사는 어디서 나올 줄도 모르고 본고사 수학Ⅱ는 정말 어려웠다. 각설하고, 의대에 떨어진 덕분(?)에 사범대학에 진학하여 순위고사(지금은 임용고시라고 한다)를 통과했고, 태능중학교에 첫발령 받아서 교사가 되었다.

당시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 중 교사가 된 사람은 절반이 채 안 된다. 그나마 사범대학을 나온 친구들은 교사의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인문대학을 졸업한 친구들은 전공을 살려 취업한 경우가 많지 않았다. 지금도 인문학 전공자들은 취업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오늘 학생들과 면담을 했다. 과거에는 대부분이 전공 관련 분야로 취업하고 싶다고 했는데, 요즘 신입생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과거의 학생들에 비해 약하다. 한국어 교사가 되겠다고 하는 학생들보다 단순히 CEO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고, 한적한 곳에서 카페를 경영하고 싶다는 아이도 있다.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싶다고 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과 상담할 때면 무엇이 가장 이 아이와 잘 어울릴 것인가를 생각하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조언을 해줄까 생각한다.

때로는 책을 권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나온 과거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끌기 위해 차를 마시면서, 혹은 뒷산을 걸으면서 이야기를 한다. 체력이 약한 현대의 아이들은 산에 가자고 하면 항상 얼굴을 찡그린다. 힘든 것이 싫다는 표정이다. 대화가 항상 진지한 것만은 아니다. 너무 진지하게 대화를 하면 아이들이 싫어한다. 은어를 쓰기도 하고 별명을 부르기도 하면서 친근감을 보여주면 금방 친해질 수 있다. 스스로 반문해 본다. 오늘은 아이들과 잘 어울렸는가, 너무 늙은 표시를 낸 것은 아닌가 하고 혼자 생각해 본다. 그리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큰 일꾼이 될 것을 빌어 본다.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들과 대화(상담)를 나눴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95학번 아이들은 졸업하고 제일 많이 간 곳이 학원이었다. 그 때는 그 쪽으로 바람이 불어 억 대 연봉을 받는 제자도 있었다. 노량진에서, 인천에서 유명 강사로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던 제자가 있었고, 지금은 교수가 되어 나타나는 제자들도 있다. 한국어를 강의하다 보니 외국인 제자들도 자연히 많아졌다.

그들은 귀국하면 한국관련 기업에 취직하기도 하고, 한국어 교수로 취업하기도 한다. 때로는 한국에 있는 대학에 교수로 남아 있기도 한다. 이중언어에 능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제교류 관련 업무를 맡아보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정식으로 취업이 되기도 한다. 돌아보면 한국어를 전공했다고 해서 모두 한국어 교사가 된 것은 아니었다.

한국어를 바탕으로 제2언어, 제3언어 등을 익혀 다른 직업으로 연결한 제자들도 많고, 전혀 다른 곳에서 성공한 제자들도 있다. 새로운 신문사를 차려 성공하기도 했고, 학원을 운영하면서 시인으로, 혹은 소설가로 데뷔한 제자들도 있다. 이런 친구들은 그나마 전공 비슷하게 진로를 선택한 경우지만 항공사 승무원이 되었거나, 한국 최초의 정장 임대쇼핑몰을 열어 대박이 난 제자도 있고, 엉뚱하게 증권사에 들어가서 높은 지위에 오른 친구도 있다.

세상에는 내가 주장하는 것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꿈을 내게 맞춰서도 안 된다. 아이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끔 안내만 잘 해 주면 된다. 나의 제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취미를 직업으로 연결해서 대박이 나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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