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식 <사진작가·수필가>

어딘가로 훌쩍 여행을 떠나버리고 싶은 시간이 있다.

그 여행의 목적지가 여러 번 가보았던 익숙한 장소이기보다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미지의 세계일 때 두근거림도 배가 될 것이다. 우리가 TV나 영화와 같은 영상매체로 늘 대했던 곳은 그 만큼 매력이 떨어진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이거나 덜 알려진 곳이야 말로 여행을 하는 입장에서는 최상의 여행코스가 된다.

남들이 다 다녀온 곳을 이야기할 때 나는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 내지는 관객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를 다녀오면 내가 주인공이 된다.

가슴 설레던 순간을 이야기하면 모든 관객들은 나에게 집중하고 그 속에 나 자신이 우뚝 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행지를 선정할 때도 이왕이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매년 여름이 되면 어딘가로 떠나고자 노력했고, 낮선 곳에서 낮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그런 기대감으로 시작된 인도 라다크로의 여행은 많은 기대감과 약간의 두려움을 동반했다.

인도에서의 첫 느낌은 강렬하면서도 가슴을 뛰게 했다. 그러나 잠시 후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면서 인도 사람들에 대한 느낌은 ‘너무 느리다’라는 인상을 받았다. 탑승객에 대한 배려는 없는 듯 보였고, 서두르는 모습이 전혀 없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하니 현기증이 난다.

뉴델리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인도 북서부 히말라야 지역인 잠무카슈미르 주(州)의 주도(州都)이며 관문인 스리나가르(SRINAGAR)에서 육로를 통하여 레로 들어가는 일정이다. 그곳에서 조지라패스를 넘어 카르길, 라마유로, 알치, 레로 이어지는 지역은 메마르고 거친 황무지처럼 목이 말라 있었다. 그럼에도 곳곳에 거대한 꼼빠가 세상을 구원하려는 듯 위용을 자랑하며 굳게 서있다. 인간과 신의 경계일지 모르는 꼼빠는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지주이며, 삶의 원천이 되고 있었다.

수 백 년을 넘어 지켜온 유산과 살아남기 위하여 메마른 산꼭대기에 집이나 성을 쌓고 살아왔던 사람들은 지금도 자연을 거스르지 아니하고 역경을 헤쳐 나가며 삶을 영위한다. 그들의 얼굴 모습에서는 가난에 찌든 힘겨움보다는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기쁨이 서려있다. 겨울이 길고 산이 높아 1년에 7월부터 9월까지만 육로로 접근이 가능하다는 라다크지만 시간을 잃어버린 도시도 아니고 문명과 단절된 곳도 아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 Hodge) 여사가 쓴 “오래된 미래”라는 책의 내용은 현재 시점에서 볼 때 약간 동떨어진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간혹 400년이 된 가옥을 대대로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라다키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골동품이라 할 물건들을 아직도 사용하며 과거와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음을 볼 때 신구(新舊)의 경계가 어디인지 분명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 라다크는 짧은 시간을 가지고 여행하기 보다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장기여행을 해보면 좋은 지역이다. 물가가 싸고 사람들의 인심이 후하여 경제적 부담도 적다. 많은 꼼빠가 있고 스투파에 매어진 타르초가 바람에 흔들리며 풀어내는 신의 메시지는 심신이 피곤한 현대인들에게 영혼을 맑게 하는 묘약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시간이 되면 떠나보자. 여행을 떠나는 순간 삶에 지친 심신은 힐링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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