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 명예교수

(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 명예교수) 사회는 인간 삶의 터전이다. 그렇기에 그 터전은 비옥하여야 한다. 비옥하다는 말은 환경이나 여건 등이 제대로 구비되어 있음을 말한다.

인간의 삶이 영위되는 터전인 사회가 비옥하다는 것은 인간의 외형격인 신체와 체질격인 정신이 튼튼함을 뜻하는 것이라 풀이할 수 있다. 사회를 대상으로 할 때 신체에 관련되는 것으로는 도덕, 윤리, 규범, 법률, 규칙, 제도 등을 들 수 있고 정신에 관련되는 것으로는 인본, 인권, 홍익, 공동체 의식, 민주, 공정, 형평, 공사분별, 상부상조, 긍휼 등을 들 수 있다. 전자의 핵심적인 가치는 안전이고 후자의 핵심적인 가치는 정의라 할 수 있다. 사회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외형적으로 도덕, 윤리, 규범, 규칙, 제도 등이 원활하게 작동됨으로써 안전(安全)이 확보되고 체질적으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공적인 일들이 옳고 그름(시비:是非)을 가려 옳음(시)을 존중하는 정의(正義)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 사회는 무엇보다 안전이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인간의 삶이 영위되는 모든 곳은 안전이 필요하다. 생명과 재산 등의 안전을 비롯하여 주거, 교통, 통신, 폭력, 학습, 직장, 거리, 교량, 하천, 산야 등에서 총체적으로 안전이 필요하다. 교통질서가 확립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목적하는 지역을 왕래할 수 있고 치안질서가 확립되어 마음 놓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으며 주위에 대한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없이 평화롭게 공원을 산책할 수 있고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고 자유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으며 어떠한 강풍이나 폭우에도 신변에 위협을 받지 않고 교량을 건널 수 있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건강한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어서의 핵심적인 요소는 정의이다. 정의는 사회에서 전개되고 제기되는 현상이나 사안에 대하여 자신과의 관련 유무를 떠나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를 가려내고 바르게 세우는 것을 말한다. 자기와 관계가 없거나 무관하다고 하여 도외시 내지 외면하지 않고 객관적 입장에서 옥석(시비)을 가리고 옥(시)의 편에 서는 마음이나 자세 등을 말한다. 정의야말로 사회를 지탱하고 건강을 유지케 하는 바로미터(척도)이다. 정의가 살아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사회의 건강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의 세상은 정의가 외면당하거나 무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든 곳에서 예외 없이 비정의적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가정에서의 자녀 학대, 학교에서의 금품갈취 및 집단폭력, 군에서의 원시사회적인 계급횡포, 직장에서의 인권유린적 압박, 정부 관료들의 국민에 대한 군림적인 행보, 정치인들의 ‘눈 가리고 아옹식’의 표리부동 행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비정의적이고 불의적인 행각들이 전개되고 있다. 이들 중에서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사회인들의 정의에 대한 불감증 현상이다. 공공기관이 공익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여도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하여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진선미를 추구하여야 할 배움의 동산인 학교에서 학우끼리 금품을 갈취하고 집단폭행을 행하는 야만적 행동이 자행되어도 손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하여 ‘나 몰라라’하며, 길거리나 공원 등에서 패거리로 완력을 휘두르는 불량행위를 보고도 그대로 지나치며, 직장이나 지역사회 등에서 옳지 않은 행동을 행하여도 자기와 무관하다는 생각에서 외면해 버리는 현상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는산업화와 민주화 등이 고도화되면서 개인주의와 인권존중주의의 물결을 타고 급속히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지도나 제재 등이 수반되지 않은 채 방치 내지 포기상태로 전개되고 있다. 이는 그만큼 사회가 병들어 있거나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사회가 병들어 있고 무기력하다는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가야 할 인간 삶의 터전인 사회가 점점 척박화 내지 황폐화 되고 있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무리 환경이 아름답고 경제적 여건이 잘 갖추어져 있다하더라도 안전이 확보되어 있지 않거나 정의가 제 빛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이다. 한마디로 죽은 사회이다. 그렇기에 사회는 안전과 정의의 토대를 튼튼하게 구축하여야 한다. 도덕, 윤리, 규범, 법률, 제도 등이 제 값을 하고 인권, 홍익, 공동체 의식, 민주, 공정, 형평, 공사분별, 상부상조, 긍휼 등이 제 빛을 제대로 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안전 확보와 정의 수호 문화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여야 한다. 안전과 정의야말로 건강한 사회 건설의 필수요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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