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시인

(나기황 시인)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는 어디일까. 바티칸 시국(市國)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면적 0.44㎢, 인구 약 1000명의 최소 주권국가로 국가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가톨릭교황이 있는 곳이라는 상징성이 강하다.

이곳 바티칸시티에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이 있다.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추기경들의 비밀회의, 즉 콘클라베(conclave)가 열리는 장소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가 그린 프레스코 화(畵)로 더 유명한 곳이다.

프레스코화는 하얀 회반죽을 벽에 발라서 그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염료를 넣어서 천천히 색이 회벽에 스며들게 하는 채색방법으로 엄청난 노력과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기법이다. 미켈란젤로는 성당 천장에 ‘천지창조’를 그린 지 22년 만인 1535년 4월에 발판조립을 시작으로 1541년 10월 ‘최후의 심판’을 완성하게 된다.

천국과 지옥, 연옥에서 벌이는 391명의 인간군상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최후의 심판’ 앞에서면 61세의 노(老)화가 미켈란젤로가 혼신의 힘을 다해 회벽에 색을 입히다 그의 영혼과 육체가 그대로 그림에 스며든 것 같은 환상에 빠져들게 된다.

작품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인간의 작품이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하게 다가와 정신이 아득해지는 이른바 ‘스탕달신드롬’을 경험하게 한다.

‘다음백과사전’에 의하면 “스탕달 증후군(Stendhal Syndrome)은 예술 작품을 본 사람이 충격과 감동으로 인해 격렬하게 흥분하거나 어지러움 등을 느끼는 증상이다.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Stendhal)이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에서 미술품을 감상하고 나오던 중 무릎에 힘이 빠지며 탈진했던 것에서 유래했다. 피렌체 증후군(Florence syndrome)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기술돼 있다.

지난 달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가톨릭 성지를 찾아보는 순례여행이었지만, 이탈리아 로마를 비롯하여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알프스의 몽블랑,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언덕 등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기대가 매우 컸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여행 내내 ‘스탕달증후군’에 시달리는 행복한 여정이었다.

2C초,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지하무덤, 카타콤바(catacombs)에서 느끼는 시간의 의미는 특별했다. 음습하고 울울한 원혼의 음성이 들릴법한 지하무덤에서 오히려 따뜻한 ‘시간의 온도’를 느꼈다.

여행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순례의 ‘시간여행’은 역사적 진실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끝은 ‘시간의 근원’을 깨닫는 일이다. 2000여 년 전, 서기 79년 8월 24일, 나폴리 연안 베수비오 화산이 돌연 폭발하면서 인구 2만의 고대도시가 화산재에 묻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미처 피하지 못한 2500명의 매몰자와 유적들이 시간이 멈춘 채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천년고도 폼페이에서 느끼는 ‘시간의 무게’ 역시 가볍지 않았다.

시대를 넘어 회자되는 뛰어난 인류문화유산을 만나는 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는 화두는 ‘시간’이었다. 문화예술의 가치를 지탱하는 원초적 요소가 시간이기 때문일까.

과거의 사람들이 지니고 살았던 문화양태가 현재와 어떻게 다른가의 차원이 아니라, 그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존재하는 시간의 영속성 앞에 한없이 겸손해지는 인간본연의 모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시간여행’을 하는 존재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듯 ‘길 위의 시간’동안 인연을 맺으며 살다가 결국 다시 출발점이었던 ‘시간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유한적 존재라는 사실.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끝내 낙엽으로 사라지는 단풍이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유럽의 ‘시간여행’에서 맛본 ‘스탕달증후군’의 여운이 쉽게 가실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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