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수필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강냉이를 넓은 광주리에 소복이 담는다.
강냉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이내 양손으로 하모니카를 불고 있다. 한 개 집어 맛을 보니 알곡이 톡톡 터지며 입안 가득 감칠맛이 돈다. 가족들 모두 서너 개씩은 앉은 자리에서 게눈 감추듯 먹는다.
지인은 올해도 변함없이 텃밭에서 수확한 강냉이를 푸짐하게 보내왔다. 그의 마음 씀씀이는 고향의 향취를 덤으로 전한다. 어디 강냉이뿐이랴. 고구마와 감자 가끔은 애호박과 상추도 공짜로 얻는다. 농촌에서 나고 자란 터라 결실을 얻기까지 그가 흘린 땀과 수고를 너무나 잘 안다. 
나는 강냉이를 거저 품에 안지만, 그는 이른 봄 땅이 녹기 이전부터 바지런히 땅을 일군 결과물이리라. 강냉이는 밭이랑에 꼬챙이로 구멍을 내 두어 알씩 심으면, 훈풍이 불 때쯤 흙을 비집고 오른다. 칠월의 무더위가 절정에 이를 때쯤 훌쩍 자라 밭 가득 넘실거리는 자태는 높은 뒷산의 녹음이 부럽지 않다.
강냉이는 버릴 것이 없는 유용한 작물이다.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않은 시절 즐겨 먹던 주식이다. 그뿐이랴. 강냉이 알을 말려 두었다 튀밥을 튀기면 ‘뻥’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온 마을로 퍼졌다. 그런 날이면 동네 꼬마들은 뻥튀기 아저씨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강냉이의 활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수확하고 남은 대공은 말려 불쏘시개로 썼고 껍질로는 공예품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하얀 속대는 씹으면 시원하고 감미로운 맛이 감돈다. 뜨거운 태양 빛 아래 뛰노느라 목마른 개구쟁이들의 갈증을 해소하기에 그만한 것이 없었다.
달짝지근한 옥수숫대를 고르는 데는 그만의 요령이 있다. 밑동이 튼실하고 붉은빛을 띠어야만 한다. 연둣빛이 나는 대공은 비릿하니 영 맛이 없다. 막상 좋은 놈을 골랐다 해도 그 맛을 보기란 호락호락하지 않다. 무엇보다 조심성 없이 대공을 벗기려 했다간 날카로운 껍질에 입술을 베이기 일쑤다. 우선은 이빨로 껍질을 살짝 물어 최대한 조심스럽게 당기듯 벗겨야 한다. 그렇게 껍질을 벗겨내야 드디어 시원하고 달콤한 속 대공이 나오는 것이다.
강냉이가 또래들과 뛰어놀던 유년의 시절로 데려간다.
개구쟁이들에게 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옥수숫대며 오디를 실컷 먹은 뒤엔 냇가로 향했다. 입술이 파래지도록 물놀이를 한 후 따끈한 자갈에 누워 오싹해진 몸을 녹이던 시간은 천국이 따로 없다. 종일 산천을 뛰어놀다 해가 서산마루에 걸쳐서야 허기를 느끼고 모두들 집으로 향했다.
강냉이는 도시를 떠나 시골을 찾는 이들에게 유년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당시 어린 꼬마들에겐 강냉이와 함께 달큼한 밑동도 호기심을 끌었다. 어디 그뿐인가. 관심을 받지 못하던 수염까지 이제는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성인병과 다이어트에 좋다는 음료를 남녀노소가 즐겨 찾으니 이쯤 되면 녀석은 버릴 것 하나 없는 귀한 몸이다.
볏과의 한해살이풀인 옥수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만 같다. 생애를 살펴보니 알곡과 대공, 잎줄기와 수염 모두를 기꺼이 내어주고 있다. 자신의 몸을 살찌워 인간에게 피와 살로 또한, 보금자리를 덥혀 주는 불쏘시개로 그 쓰임이 끝이 없지 않은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따로 없다.
주말 오후 입이 궁금해져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강냉이를 꺼낸다. 찜통에 푹 쪄서 추억 속을 유영할 참이다. 한여름 찬란했던 강냉이의 인기와 풍미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내 귓전에는 그 시절 향수 어린 하모니카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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