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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한국문학을 사랑한 대마도 작가<이석우>
풍향계-한국문학을 사랑한 대마도 작가<이석우>
  • 이석우
  • 승인 2017.11.2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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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나카라이 토스이 생가 기념관(半井桃水館)은 이즈하라 나카무라 584 번지에 있다. 이 기념관은 무사들이 살았던 나카무라지구의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는데 귀를 잘 맞춰 쌓아올린 돌담길이 매우 인상적이다.

토스이는 1860년 12월 2일 나카라이 탄시로의 장남으로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의사집안인데 대대로 대마도 태수를 섬기고 있었다. 그는 부산 왜관에서 근무하던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다. 이 때 부터 우리말을 배우며 조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조선에 대한 애정과 정보를 활용하여 유능한 기자로 인정받게 되는데, 특히 우리 춘향전을 일본에 소개하여 일약 한국문학에 정통한 인기 작가로 성장하게 된다.

아버지의 왜관 근무가 끝난 1875년 대마도로 돌아가 16세에 동경의 영문학학원 공립학사에서 공부하였다. 그가 입학하던 해에 강화도에서 일본 군함‘운양호 포격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은 운양호가 단순한 해수 측량이라 속이고 불법으로 영종도를 돌아 강화도 초지진에 접근하여 일부 일본병사가 보트를 타고 칩입하자 조선 수비병이 정당방위의 경고성 총격을 가하면서 촉발되었다. 이때 강화 초지진은 군함 운양호의 포격으로 전파되었고 영종도는 상륙한 일본병사에 의해 35명이 참사 당하였다. 일본은 2명의 경상자가 발생했을 뿐이었다. 운양호는 110 mm와 40 인치의 함재포를 탑재하고 있었고 우리는 사거리가 700m 정도인 구경 2인치 대완구포를 배치하고 있었으니 대적이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신호탄이 되고 말았다. 이에 대하여 일본인들은 한국 포대가 먼저 발포하였다고 난리를 치고 있었는데 의외로 유력한 신문 중의 하나인 도쿄니치니치(東京日日)」는 보도의 중립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 때 학생이었던 토스이도 이 신문에 일본 군함의 무력행사를 반대하는 글을 보내 게재된다.

1882년 다시 아버지의 조수로 부산으로 건너온 그는 아사히신문의 계약직 촉탁으로 부산 특파원이 된다. 그해 별기군과 차별대우를 받던 조선의 구식군대가 6월 9일 임오군란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 사건을 생동감 있게 취재 보도하여 1884년부터 정식 기자가 되었다. 이 때 소설도 쓰기 시작하여 1885년에는 소설 ‘오시츤보’를 발표하였다. 22세 때는 춘향전을 20회에 걸쳐 연재하여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그가 근무하던 1887년까지 5년간의 열정적인 기자활동으로 인하여 아사히신문은 판매부수가 급상승하게 되고 따라서 토스이의 명성도 높아졌다. 이후 그는 다방면에 걸쳐 유려한 필체를 선보이며 독자들의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20 세의 소설 지망생 히구치 이치요는 1891년 4월 5일 토스이를 찾는다. 그 때 토스이는 도쿄 아사히신문에 「코사후쿠카제」를 연재하고 있었으며 그의 나이 32 세였다. 이들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은 겨우 5 년 만에 이치요가 요절하면서 조용히 소멸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오직 도스이만을 연모하던 그녀의 애절한 일기가 공개되었을 때 일본 독자들은 그들의 사랑에 다하여 가슴 아파하였다. 이치요의 단아한 모습은 현재 일본 5000엔 지폐에 담겨 있어, 일본인들은 토스이와 이치요의 애절했던 사랑 이야기를 늘 지갑 속에 넣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청일전쟁 이후 조선에 대한 일본 여론이 나빠지고 있었다. 그러나 토스이는 조선에 대해 가치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고 1895년에 연재된「속 호사부는 바람」에서는 일본·조선·중국·만주의 정치적·문화적 독립과 원만한 동맹관계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조선침략이 본격화 되면서 그의 말은 빛을 잃게 되었고 아사히의 조선통 기자의 명성과 더불어 일본 문단에서의 그의 인기도 퇴색되고 말았다. 한국문학을 사랑했던 나카라이 토스이는 1926년 11월 21일 향년 67 세로 사망하여 현재 도쿄 분쿄구 고머고메에 영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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