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청주시청 한 과장의 푸념을 들어보자.

“여섯시 땡 하면 뒤도 안돌아보고 퇴근합니다. 직원들과 소주 한잔요? 술 한잔 하면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아예 자리를 갖지 않은지 오래 됐습니다. 점심도 가능하면 같이 안합니다. 업자가 와도 볼 일만 보고 가게 하고 바깥에선 아예 만날 생각을 안합니다. 이 참에 술, 담배도 끊어 컨디션은 최고입니다. 직원들과 속 터놓고 말도 못하는 풍토가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다른 한 과장도 마찬가지다.

“업무상 업체 관계자와 접촉이 많은 자리라 자연 식사자리, 술자리 제안이 많이 들어옵니다. 저녁도 퇴근 후 집에 가서 식구들과 먹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누가 제보했는지는 몰라도 내 자신이 감찰 요주의 인물이 됐다는 사실을 알고는 몸을 사리지 않을 수 없어요. 말년에 창피당할 이유가 없잖아요”

또 다른 사업부서 과장은 며칠 전 행안부 감사에서 사실확인서에 사인하고 말았다. 퇴직이 코 앞인 그는 감사반이 내민 자료를 보고선 깜짝 놀랐다. 과거 자신이 한 말이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 같아 아예 두 손을 들어버렸다. 변명하고 싶지도 않았고 이런 상황을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누군가가 메모했거나 녹음해 뒀다가 감찰반에 제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얼굴 없는 제보자와 같이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망연자실했다.

청주시청 공무원 사회가 살벌하다. 직원들끼리 피아(彼我) 구분이 안될 정도로 불신이 극에 달한 분위기다. 지난 9월 청주시를 대상으로 한 국무총리실 감찰반에 200건이 넘는 제보가 있었다는 확인 안 된 소문은 바로 청주시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청주시 분위기가 삭막한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청주시·청원군 통합에 따른 부작용과 인사 실패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사는 예측 가능해야 함에도 서열 하위권에 처져 있는 사람을 발탁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불신의 단초를 제공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통합으로 물과 기름같은 조직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생겼다.

여기에 공무원으로서 차마 상상도 못할 비리도 한몫했다. 공무원이 여성접대부를 노래방 등에 공급하는 보도방을 운영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화장실에서 휴대전화로 여성 신체를 몰래 촬영하지를 않나, 상사를 무자비하게 폭행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등 공무원으로서 상식이하의 짓을 저질러 스스로 얼굴을 먹칠한 게 청주시 공무원이다.

지난 9일 정치자금법위반혐의가 인정돼 직위를 상실한 이승훈 전 청주시장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청렴교육을 마치고 가진 차담회에서 이렇게 한탄했다고 한다. “공무원 수가 큰 차이 안나는데 충북도는 저렇게 조용하고 청주시는 왜 이리 시끄럽냐”고.

사람 사는 데서는 별의 별 일이 다 생긴다. 공무원도 사람인데 천사처럼 살 수는 없다. 미꾸라지는 어느 조직이나 다 있다. 청주시처럼 공무원수가 3500여명이 되는 큰 집단에선 무슨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문제는 와해된 조직을 어떻게 재건하느냐다. 그러기 위해선 내년 지방선거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시장이 나와야 한다.

몇 년전 모 군수가 계장급인 6급(주사)의 업무실적을 평가해 하위 5명을 청소업무나 민원인 응대 등 현장지원반에 투입, 긴장감을 안겨준 적이 있다. 6급은 조직의 허리로 도장 찍는 기계가 아니다. 6급이 일해야 조직이 산다는 것을 간파한 그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 일하지 않으면 안될 풍토를 만들었다.

청주시에 필요한 게 바로 이같은 강력한 리더십이다. 사상누각인 청주시를 바로 세우려면 이런 시장을 뽑아야 한다. 그게 청주시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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