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식 <청주 청석고 교장>

오늘도 교실을 한 바퀴 돌고 교장실로 들어와 조간신문을 집어 듭니다.

펼쳐 든 신문에는 올해로 마지막을 맞는 사법시험이 굵은 글씨로 강조돼 있습니다.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사법고시는 말 그대로 등용문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가정의 우수한 인재들이 신분상승의 꿈을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확실한 사다리였습니다. ‘개천에서 난 용’들이 매년 언론을 통해 소개되었고 그렇게 ‘용’이 된 제자들이 몇몇 기억이 납니다.

내가 교단에 선 지 13년이 되던 해에 고등학교 3학년 담임으로 만난 승구도 그 중 하나입니다.

승구는 옥천 이원중학교를 졸업하고 청주에서 대학을 다니던 형을 따라 청주에서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승구는 노력에 노력을 더하는 모습으로 힘겹게 고3 수험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개인 상담을 한 기억으로는 말단 공무원이신 부친이 부인과 세 자녀를 부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승구가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실명이 되어 가계가 급격히 기울었고 결국 자녀들의 학비조차도 어렵게 조달하고 있는 사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옷차림이나 도시락은 초라해 보였지만, 눈의 총기는 누구도 따라 올 수 없었고 핏발 선 눈을 감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성적으로 K대 법대는 무난한 정도였지만 가정 형편상 국립대 법대를 가야한다며 3년 내내 자신에게 가혹할 만큼 엄격했던 그 제자에게 격려 밖에는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성공을 위해 젊음을 불태우던 제자는 결국 뜻하는 대로 S대 법학과에 입학하며 고등학교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승구의 기억이 어렴풋해 질만큼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옛 제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기억 속의 그 처절한 노력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계속 해 왔을 제자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힘겹게 법전과 미래를 걸고 씨름을 했을까하는 생각으로 스스로 척박한 환경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 제자를 힘껏 격려해 주었습니다.

교단에 서면서 매년 수백 명의 제자들과 보낸 38년의 세월만큼 많은 기억들이 쌓였습니다. 과거에는 불우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어떻게든 환경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던 제자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때와 비교하여 장학혜택도 복지체계도 비교할 수 없이 확대되고 좋아졌지만, 제자들의 노력과 투지는 점점 옅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침부터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는 학생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교실을 보며 우리가 스스로 노력하고 자신의 가치를 높여가는 과정의 소중함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지만, 그 기회를 누구나 성공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기회와 성공 사이에는 고통스러운 노력이라는 연결 고리가 있음을 외면하는 순간 기회는 더 이상 기회가 아닙니다.

이제 내가 천직이라고 믿고 살아 온 교직도 1년 여, 승구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저 말 없이 내려다보는 우암산을 망연하게 바라보는 11월 끝자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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