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부조금에 관한한 이렇듯 경사건 애사건 다를 바가 없어 동네 사람들은 부조금에는 '짠돌이'요. 일에는 '기름챙이'라 하여 '짠돌이'의 '짠'과 '기름챙이'의 '챙이'를 따서 조합하여 그에게 '짠챙이'란 별호를 붙인 것이다. 이러하니 심성 여리고 정직한 짠챙이의 처가 얼마나 동네 사람 보기 부끄럽고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겠는가.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여자 사정은 여자가 알아서, 동네 애경사에 관한한 짠챙이 처의 남편을 대신한 헌신의 마음을 동네 아낙네들이 모를 리 없다. 그리하여 남정네들이 짠챙이에 대한 불만의 골이 깊어지는 만큼 아낙들의 짠챙이 처에 대한 안쓰러움과 가련해하는 마음은 더욱 쌓여만 가는 것이었다.” (‘조홧속’ 중에서)

구수하고도 진솔한 언어로 독자들과 만나는 박희팔(78·사진) 소설가가 최근 중편소설집 ‘조홧속’을 펴냈다.

이 책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조홧속’, ‘남남동기’, ‘바람이 불고 간 자리’ 등 모두 4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홧속’은 농민들의 삶을 정감 있게 그린 수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지난 9월 14회 류승규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박 소설가는 이 책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직접 듣거나 직접 보고 겪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각색해 소설 속에 녹여냈다.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이나 동네에 난 초상을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인 ‘조홧속’ 등이 그렇다.

특히 ‘조홧속’에서는 장례식장이나 상조보험이 보편화되기 전 시골 마을의 장례 문화를 잘 보여준다.

당시 동네 초상은 곧 내 초상이었다. 어느 집이 상이라도 당하면 온 동네 사람들은 상갓집에 모여 마치 제 일처럼 도왔다. 남자들은 하던 일을 제쳐두고 상가로 가 차일을 쳤고 밤을 새며 슬픔을 나눴다. 망인을 장지까지 편히 모시기 위해 상여도 직접 맸다. 이처럼 지금은 보기 힘든 풍습들이 책 속에 고스란히 실려 있어 중장년들은 소설을 읽으며 향수를 느끼기도 한다.

갈등은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이 책에도 역시 갈등은 존재한다. 하지만 ‘조홧속’에 나오는 갈등 속에는 ‘정’이 있다. 그리고 우리네 이웃들이 보여주는 ‘정’은 호쾌한 감동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이 느릿하고 소박하면서도 순박한 이웃들의 이야기는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또 다른 울림을 준다.

박 소설가는 꾸준히 다양한 장르의 소설들을 발표하고 있다. 지금까지 콩트집(‘시간관계상 생략’), 엽편소설집(‘향촌삽화’), 단편소설집(‘바람타고 가는 노래’), 장편소설(‘동천이’), 연작소설집(‘바닥쇠들 아라리’), 칼럼집(‘풀쳐생각’), 전기집(‘고장을 빛낸 사람들’) 등을 펴냈다. 이렇듯 그는 이미 대부분의 소설 장르를 섭렵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내년에 다시 새로운 시도에 나선다.

‘스마트 소설집’ 발간이 바로 그것.

박 소설가는 “내년에 짤막한 소설들을 모은 ‘스마트 소설집’을 발간 할 예정”이라며 “스마트 소설집은 스마트 폰으로 읽을 만한 짧은 소설들을 90여편 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후년에는 4대 명절을 소재로 한 명절 소설을 엮어 선보일 예정이다.

박 소설가는 “스마트 소설집이라는 새로운 장르까지 섭렵하고 나면 콩트, 연작소설, 엽편소설, 칼럼 등 소설의 전 장르를 망라하게 된다”며 “이후에는 대하소설을 집필해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1941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국민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28년간 중등교사로 재직했으며 1985년 교육신보공모 1회 전국 학·예술상에 소설 ‘행군’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한국소설가협회·포석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뒷목문학회장과 충북소설가협회장을 역임했다. 한국문인협회 서사문학 연구위원이며 동양일보 논설위원이기도 하다.

도서출판 푸른나라, 302쪽, 1만5000원.

<박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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