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옥
황매산 아래 영암사지 금당 터
서성거리던 등산객들 산으로 오르고 나자
폐사지에는 나와 돌사자 두 마리만 남는다
혼자 앉아서 옛 절집의 규모를 골똘히 궁리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 바탕에 흰줄 무늬 나비 한 마리
팽팽한 정적의 수평을 헤집고 다니는 곡선이 부드럽다
나비의 궤적을 쫓다가 그만 눈이 번쩍 뜨인다
나비는 절이 번성했던 시절, 주지승의 혼령이었던 게다
천 년 동안 비워둔 절집 소식이 궁금해서 잠시 마실 나온 거다
그래서 초석 위에 앉아서 더듬이로 회상하다가
다시 기단으로 옮겨가서 긴 명상에 잠기는 거다
그러니 폐허가 아름다운 게지
저승과 내통하는 다리를 몰래 숨겨두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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