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웅 <농협충북본부 홍보실장>

지난 13일 북한군 1명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자유 대한민국으로 귀순한 사건이 벌어졌다. 22일에는 북한군 추격조가 남쪽으로 달려가는 귀순자 바로 뒤에서 조준사격을 하는 충격적인 장면이 유엔군사령부가 공개한 CC(폐쇄회로)TV 영상을 통해 전 세계에 밝혀졌다. TOD(열상감시장비) 영상에서는 우리 측 군인이 낮은 포복 자세로 접근해 부상으로 쓰러져있던 귀순 병사를 구조하는 긴급한 장면도 생생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를 보며 21년 전 대한민국을 혼란에 몰아넣었던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떠올랐다.

이 사건은 1996년 9월 18일 북한 상어급 잠수함이 강릉 앞바다 부근에서 좌초된 것을 인근을 지나던 택시 기사가 발견하고 신고를 하면서 시작됐다. 잠수함에 탑승한 인원은 총 26명이었으며, 이들은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부 소속으로서 대좌와 상좌 등 고위급 장교를 포함해 군관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좌초된 잠수함에서 빠져 나온 북한 승조원 13명은 육지로 무장침투 했고, 군인과 경찰, 예비군들은 동해안 일대에서 이들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을 벌였다.

그 당시 나는 강원도 모 지역 특수전부대에서 소대장으로 군복무 중이었다. 무장간첩 침투 신고가 있던 날 부대는 비상이 걸렸고 모든 대원들은 신속히 완전무장을 한 채로 연병장에 집결했다. 부대장으로부터 모든 상황을 전파 받은 후 무장공비 소탕작전을 위해 곧바로 대관령 선자령 지역으로 급파됐다.

선자령에 도착했을 때에는 어둠이 낮게 깔려져 있었고 부대원들은 실탄과 수류탄을 지급받은 채 신속하게 매복에 들어갔다. 어둑해진 골짜기 아래에서는 미리 매복에 들어간 다른 부대원들이 난사하는 소총, 기관총 소리와 수류탄 폭음이 쩌렁쩌렁 허공으로 울려댔다. 실전을 눈앞에서 확인하니 공포와 두려움으로 숨 쉬기가 힘들 정도로 심장 박동이 뛰어댔다. 우리 부대원들도 공포감에서 오는 착시와 이명현상으로 어두운 골짜기 아래로 소총을 난사했고 수류탄도 투척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무장공비 사살 소식뿐만 아니라 아군과 민간인 피해사항도 전해졌다. 이후 우리 부대는 대관령에서 북쪽 방향인 괘방산, 오대산, 응복산, 미시령, 고성군으로 옮겨 가면서 작전을 펼쳤다. 왜냐하면 무장공비들이 북한으로 월북을 시도하기 위해 북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11월 5일까지 계속된 작전에서 잠수함에 탑승했던 26명 중 국군에 의해 사살된 13명을 포함해 모두 24명이 죽었고 1명은 생포되었다. 마지막 1명은 끝내 체포하지 못했는데 북으로 월북한 것으로 추정 할 뿐 생사를 확인 할 수 없었다. 아군 측은 군인 11명과 경찰 1명, 예비군 1명을 포함한 민간인 6명이 교전 또는 사고로 사망했다. 자세히 밝히기 곤란하지만 우리 부대원 1명도 작전 중 사망을 했고 해당 소대장도 그 충격으로 실어증 증세까지 보였다.

TV를 보니 북한 귀순자는 농담도 할 정도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는 대한민국 걸그룹 가수와 미국 드라마 CSI를 좋아하고 법학 공부도 하고 싶다고 말하는 등 대한민국의 20대 청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 음악, 드라마, 영화 등 한류문화가 북한주민 일상 속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 모양이다. 서방 세계와 문화를 경험한 김정은도 아마도 이런 현상을 가장 두려워 할 것이다. 태영호 전 북한공사는 최근 모 언론 인터뷰에서 소프트파워를 넣어서 북한 사람들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과거 동유럽이 미국의 군사적 공격으로 망한 것이 아니라 사상 문화적 침투로 망했다”며 “북한에 끊임없이 소프트파워를 불어넣으면 북한에도 아랍의 봄, 아니 평양의 봄이 충분히 가능하고, 그것은 멀리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더라도 북한을 파괴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의 대상으로 접근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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