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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실패한 최고들과 교육개혁의 개념<한희송>
풍향계-실패한 최고들과 교육개혁의 개념<한희송>
  • 한희송
  • 승인 2017.11.27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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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송 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몇 년 전의 일이다. 일명 sky라 불리는 대학 중 하나를 졸업한 어느 사업가를 알게 되었다. 호형호제할 정도의 관계가 되었을 무렵 그는 자신의 인생을 짓누르는 고통의 존재를 필자에게 고백하고자 술자리를 요청했다. 그가 힘들게 꺼낸 이야기는 허무하게도 너무나 간단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잠시의 방황으로 서울대를 가지 못했다는 사실과 그것으로 평생 마음이 어둡다는 사실을 정교하게 엮어 그가 생각하기에는 철학적인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비정상적 자기방어로 인식되는 넋두리를 직조(織造)해 내었다. 그 후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을 주변에서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K대와 Y대의 졸업생 중 많은 이들이 스스로 패배자적 사고방식에 젖어있다는 것은 그리 생소한 일이 아니었었다. 그러한 사실이 주는 놀라움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서울대생들 중에서도 적지 않은 학생들이 전공간의 차이로 인해 심리적 불편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독어과 학생이 왜 법학과 학생을 보며 스스로를 실패한 사람이란 집합의 원소에 포함시킬까하는 궁금증은 필자를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정의시켰다.

그랬다! 한국이란 나라에서는 서울대 갈 실력이 되는 사람이 다른 대학을 갈 이유가 없었고 법학과를 들어갈 실력이 되는 사람이 독어과를 들어간다는 것은 제 정신이 아닌 것이었다. 이 땅에서 한 사람의 인격과 그가 성향적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분야가 의미를 가지는가? 다만 학교를 서열화 시키고 그 안에서도 또한 전공과를 서열화 시킨 뒤, 이 도표를 내신과 수능점수를 일대 일로 대응시키는 방법을 통해 학생을 선발할 뿐 교육적 의미의 어떤 인격성이 어린 학생들에게 가시화된 지표로 선택될 수 있는가? 최고의 대학에서조차 전공과를 서열로 하여 상대적으로 실패한 젊은이들을 양산해 놓은 다음 이들을 총량으로 다시 평가하여 전체적으로 보면 어느 어느 대학이 일류다 라는 분류표를 작성했을 뿐이지 않는가? 그렇게 작성된 것이 SKY다. 이 시스템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현실을 모르는 답답한 사람이란 인식이 씌워진다. 그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이며 입학제도이며 대학제도이다. 누구도 내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으나 정작 유치원 아이들도 다 아는 지독한 현실이다. 그래서 누구나 아는 일류대학의 학생들조차 우리나라에서는 경쟁에서 실패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참으로 더 기괴한 사실이 여기에 기생하고 있다. 이 실패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점수를 따라 올 수 없는 상대적 약자들에 대해서는 우월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내면적으로는 실패자로서의 위치를 가진 이들이 외면적으로는 언제나 성공한 사람들이 되는 길을 택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는 점수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는다. 헬렌켈러(Helen Keller)여사가 남들과 경쟁해야 했다면 그녀는 최고로 추악한 점수의 주인공 중 하나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후회 없이 불사를 수 있는 사람은 그러한 유아(幼兒)적인 상대적 비교위에 자신을 올려놓지 않는다. 이순신장군이 남보다 잘나기 위해 명량(鳴梁)의 모험을 택하지 않았으며 안중근의사가 남보다 못한 점수를 비관하거나 남보다 잘났다는 모습으로 기억되기 위해 여순(旅順)의 수모를 당한 것이 아니다. 학생들을 일렬로 세워서 자신의 앞에 서있는 사람들보다는 실패했다는 감정을 주입하는 일은 인격말살의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이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가치가 가지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있다.

이 시대에 교육개혁의 기치는 인격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수업시간동안 무능력하게 앉아 있는 것을 오히려 착한 학생의 전형으로 인식하는 어른들이 스스로를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을 탓하여 비인격적 줄서기에 뛰어들게 하려는 의도에 교육개혁의 방향이 맡겨져 있다. 교실에서 자는 아이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어린 나이에 한국어를 익힌 장본인들이란 사실이 도대체 보이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물질이란 현실에 무릎을 꿇고 이상과 꿈은 이미 잃어버린 사람들로부터 교육개혁의 깃발을 되찾아 오는 일은 정녕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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