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홍순 <천안시 시설관리공단 본부장>

육십 평생 살아오면서 아픔과 보람 큰 두 개가 있다.

전자는 다섯 살 때 내 곁을 떠난 작은아들이고, 후자는 바다에 빠진 세 명을 구해낸 일이다. 이 두 가지 일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 깊이 심겨져 있다.

날 닮은 둘째아들. 5년여 방방곡곡을 다니며 불치병을 고쳐보려 고생 시킨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 그러나 그 녀석으로 인해 내 인생이 바뀌었다. 그 녀석 닮은 아이들을 돕고자 시작한 봉사가 나의 공직생활 36년을 꽃피우게 했다.

둘째 녀석은 상금이 있는 공모에서 30여회 받은 1300여만 원 전부를 기쁜 마음으로 내게 했다. 이 일로 나는 ‘전국구 아이디어맨’이라는 칭호와 함께 특진이 보장되는 지방공무원의 으뜸상이라 할 수 있는 청백봉사상 대상도 받았다. 이처럼 떠난 아들로 인해 나의 공직생활은 보람으로 가득 찼다.

부처님께서는 내 아이를 극락으로 데려가는 대신에 세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1996년 여름휴가 때 동생 가족과 서해안 몽산포로 가는 중 자동차 안에서 잠깐 조는 사이 방향을 잘못 들어 안면도 기지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할 수 없이 기지포에서 자리를 잡고 해수욕을 즐기던 중 갑자기 “사람 살려”라는 비명소리를 들었다. 이 비명소리에 그 많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밖으로 뛰어나와 바닷물에는 단 한명도 보이질 않았다.

그때 저 멀리 사람이 보이는 듯 마는 듯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튜브를 가지고 혼자 수십 미터를 헤엄쳐 가고 있었다. ‘사람 살려’라는 비명 소리의 근원지에 도착한 나는 아버지의 마음(父情)을 알 수 있는 가슴 뭉클한 장면을 코앞에서 보았다.

아버지는 파도에 얼굴이 잠기면서도 아들의 무릎을 붙들고 위로 올리고 있었다. 자신의 숨이 막힐지언정 아들을 살리려는 것이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시커멓게 변했음에도 자식을 살리려는 순결한 그 마음을 가까이서 보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그 긴박한 와중에 나는 가지고온 튜브를 아들에게 붙잡게 하고 숨이 경각에 붙은 아버지를 간신히 끌어올린 뒤 헤엄쳐 나왔다.

두 부자를 백사장에 눕혀 놓았는데 그 아이의 할머니가 내게 소리쳤다.

“저기에도 손자가 한명 더 있어요-”

할머니의 외침에도 나서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나는 기진맥진 함에도 100여m 이상을 다시 헤엄쳐 갔다. 그곳에는 튜브를 타고 파도에 떠내려가는 작은 아들이 있어 구해 나왔다.

백사장에 있던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나를 박수로 맞이했다. 아이의 할머니는 울며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나는 “그런 것 묻지 말고 아들과 손자 병원에 얼른 데려 가세요” 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길지 않은 내 인생 중 가장 보람된 여름날이었다. 그날 기지포 해수욕장의 작은 보람을 되새기면서 오늘도 잠시 혼자만의 가슴 뿌듯함에 젖는다.

어린 아들을 보내는 아픔도 내가 생각하기에 따라 보람으로 승화시킬 수 있음과 더불어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이 세상에 감사한다.

한 해가 저문다. 그리고 새로운 해가 다가올 것이다. 남은 인생을 ‘덤 인생’이라 생각하고 남 위해 살기를 다시 굳게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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