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어제(11월 30일)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는 ‘평창 롱패딩’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의 열기로 또 한차례 ‘대란’이 벌어졌다. 전날 밤부터 줄서기를 하며 밤샘을 한 소비자들은 그동안 두 차례의 ‘대란’을 겪으면서 밤샘 줄서기를 하지 않으면 ‘평창 롱패딩’을 살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더 이상 평창 롱패딩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이 백화점의 발표로 사실상 평창 롱패딩을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된 이날 행사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몰린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평창 롱패딩이 이렇게 관심을 끌게 된 것은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는 소위 ‘가성비’ 높은 제품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완판’ 신화를 만든 것이다. 올 겨울 트렌드인 롱패딩 디자인에, 비싼 구스 충전재 사용 제품, 여기에 평창겨울올림픽 라이선스 제품이라는 희소성이 큰 관심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롱패딩은 올 겨울 트렌드이다.

특히 청소년들 사이에 대유행으로 등하굣길 학생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똑같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패딩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롱패딩 열풍이 실감이 난다.

한 청소년 단체가 학생들로부터 롱패딩 유행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따뜻해서 좋아요. 학교가 추워서 입고 다녀요.”

“왜 유행인지 속사정을 들어보고 나서 뭐라고 하셨으면 좋겠어요.”

“어른들도 비슷한 겉옷들을 입잖아요. 겨울철 얇은 교복을 입으면 너무 춥기 때문에 교복처럼 입는데 비판은 억울해요.”

“그런데 사실 어디 가서 앉을 때, 또 화장실 갔을 때는 엄청 불편해요.”

“너무 길어서 일어날 때 힘들고 금방 더러워진다는 불편함은 있죠.”

“패선은 영 아니죠. 여럿이 검은 옷을 입고 몰려다니는 걸 보면 꼭 김밥말이들이 걸어다는 것 같아요.”

“솔직히 저도 예쁘다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그러데 보온력 하나는 끝내줘요. 허벅지까지 따뜻하니까요.”

운동선수들이 벤치에서 대기 중일 때 입는 옷이라 해서 일명 ‘벤치파커’라 불리기도 하는 이 롱패딩의 유행은 평창 올림픽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아이돌 그룹의 패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얇은 옷을 입고 춤추는 아이돌 가수들은 무대 밖 대기실에서 보온을 위해 롱패딩을 주로 입는데, 이런 모습이 SNS 등을 통해 자주 노출되다보니 모방심리가 강한 청소년들이 같은 옷을 찾게 되면서 대유행을 불러온 것이다.

청소년기는 같은 관심사와 같은 유행을 공유함으로써 동질감을 느끼는 심리가 강한 시기다. 똑같이 행동하거나 같은 유행을 좇지 않으면 ‘왕따’를 당한다는 심리가 같은 옷을 입게 만든다. 한때 교복처럼 유행하던 한 유명메이커의 패딩이나, 똑같이 등에 메고 다니던 수입 백팩이나, 같은 모양의 운동화, 같은 메이커의 문구류는 그 시절 청소년기에 중요한 연대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물품이자, 일종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과시욕구가 될 수 있다.

이런 유행에 대해 일부에서는 자신의 개성을 찾지 못하고 유행만 따르는 청소년들의 행위에 대해 비판의 소리도 있지만, 올해의 롱패딩 유행에 대해 학부모들은 오히려 반기고 있다.

롱패딩이 ‘방한용품’이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추위에 떨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낫다며 길고 따뜻한 옷이 유행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게다가 수년 전 유행했던 고가의 아웃도어 패딩에 비교하면 가격도 착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아예 학교 차원에서 교복처럼 롱패딩을 일괄적으로 제작해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입히자는 제안까지 나오고 있다.

롱패딩 유행으로 의류업계도 활기차다. 11월 롱패딩 매출이 10월 대비 무려 597%나 증가했다니 국소적이지만 경제유발 효과도 있는 것 같다.

롱패딩의 유행이 다소 청소년들을 개성없어 보이게는 하지만, 그래도 매서운 추위에 긴옷이 목부터 다리까지 이불처럼 감싸주니 청소년들을 위해선 참 다행스런 유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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