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심 <청주상당보건소장>

청주상당보건소 2층에는 바다를 품은 듯 푸른색을 머금은 피아노가 있다. 점심시간이면 피아노 소리에 맞춰 물방울이 사방에 튀듯, 아직은 조화롭지 못한 직원들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I have a dream~ A song to sing~”

나는 지난 7월 1일 상당보건소장으로 부임했다. 부임 보름 만에 청주에 큰 홍수가 났고, 수해를 입은 시민들의 안전과 감염병 예방을 위해 직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수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 망연자실해 있는 주민들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어야한다는 사명감으로 의료지원과 방문보건사업, 방역사업 등을 펼쳤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 직원들은 더위에 지쳐갔다. 수해로 고통 받는 주민과 격무에 지쳐가는 직원들에게 여기저기서 어둡고 무거운 소식들이 들려왔고 그럴 때마다 직원들의 어깨는 더욱 쳐져갔다.

나는 안타깝기만 했다. 이럴 때일수록 아름답고 밝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줄기 청량한 바람이라도 만들어 가슴이 답답한 직원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중 나는 “아, 그래! 노래를 하는 거야. 합창단도 좋고 중창단도 좋겠어. 같이 만나 노래하며 눈을 맞추고 호흡을 맞추는 거야. 그 작은 노래가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하고 주위를 밝게 할 수 있을 거야” 하는 생각을 했다.

나의 생각은 그야말로 작은 불씨가 됐다. 이 생각에 공감하는 팀장을 만났고 그를 통해 29명의 희망자가 모였다. 이제 어디서 연습할 것이며, 지휘자는 누구로 하고 피아노는 어떻게 구할 것인지와 같은 쉽지 않은 문제만 남아있었다.

희망자 중에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았으나 경험자가 없었다. 피아노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어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 피아노를 주위에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보건소에 근무하는 한 팀장이 집에 놀고(?) 있는 피아노가 있다며 언제든 기증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피아노가 구해지면서 훌륭한 반주자도 나타났다. 연습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보건소에서 하기로 했다. 남은 일은 지휘자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때 음악을 지도해주시던 선생님께서 독감접종으로 보건소를 방문, 직원의 안내를 받아 나의 사무실을 찾아오셨다.

50년 전의 기억 저편에서 걸어오신 70세 선생님.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로 시작하여 교회 활동 이야기로 넘어올 즈음, 장로들의 합창을 지도하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곧바로 우리 중창단 운영 계획에 대해 말씀을 드렸고 지휘를 맡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드렸다. 아니, 졸랐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정 이야기를 들으신 선생님께서는 일정을 조율하며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이렇게 우리 중창단은 ‘생이랑 명이랑’이라는 이름을 달고 제법 중창단다운 모습을 갖췄다.

뜻을 품은 지 3개월 만에 첫 연습시간을 가졌다. 청원군청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던 분들도 있고 교회 활동을 하며 꾸준히 음악활동을 한 직원들도 있었다. 노래를 해보고 싶다는 열정만으로 처음 참여하는 직원도 있었다. 단장을 뽑았고 12월 4일에는 데뷔무대에 서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점심시간만으로는 연습량이 부족해 휴대폰에 음원을 올려 각자 연습할 수 있도록 했다.

‘I have a dream’. 첫 무대에서 첫 곡으로 선보일 노래다. 이 노래처럼 우리를 슬프게 했던, 암울했던 소식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지며 밝고 희망찬 소식이 가득한 청주시, 시민과 직원들의 웃음소리로 행복이 넘치는 청주시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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