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원 충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규원 충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에 논란이 된 북한군 병사의 기생충과 관련된 김종대의원과 이국종교수의 발언에 대해서 기생충학 전공의 서민교수는 한 신문에서 언론의 과장 왜곡 보도와 일부 인사들의 광기에 가까운 언행은 인간 뇌에 존재하는 150억 개의 뇌세포 중에서 하나만 사용해서 그러한 것이라는 재밌는, 혹은 웃자는 식의 의견을 내어 놓았다.(경향신문, 11.28일자 참조)

그리고 그 같은 날, 같은 신문에서 정유진이라는 기자는 공정함에 대해서 멋진 글을 쓰면서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서 일침을 가했다. 그런데 이 분은 글의 첫 부분을 원숭이를 이용해서 조약돌을 가져오면 오이를 주는 실험으로 하였다.

즉 원숭이들에게 동일하게 오이를 주다가 한 마리에게 더 맛있는 포도를 주자 다른 원숭이들이 실험자에게 오이를 던졌다는 다소 폭력적인 실험을 제시하였다.

물론 실험자나 실험일시 등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도 그러하며 아울러 원숭이, 그것이 비비원숭이던, 개코 원숭이나 침팬지이던 오랑우탄 등등을 떠나서 우리는 보통 대개 유인원과의 동물을 그냥 원숭이로 지칭하니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 혹은 의심을 해보자.

도대체 원숭이에게 조약돌을 가져오면 오이조각을 준다는 것을 어떻게 이들 실험대상에게 설명을 했을까. 실험자가 몇 번 조약돌을 운반하는 모습 그리고 오이를 다른 실험자에게서 얻는 모습을 원숭이들이 관찰할 수 있도록 보였을까?

그렇다면 그러한 관찰이 원숭이들에게 각인이 되어 즉 남의 행동을 내가 따라하면 보상이 있을 수 있다는 과정이 기억이 되고 학습이 되어야 할 터인데 그것이 가능할까?

물론 행동심리학자인 스키너(B. F. Skinner)에 의하면 동물들도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서 학습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특정한 가치를 지향하면서 자신이 학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학습하는 것과 단순히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 더욱이 실험자에게 오이를 던졌다고? 그러한 것이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라고?

이정도의 태도를 드러낼 수 있는 동물이라면 그것은 분명히, 분명히 원숭이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닐까. 하하하.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동물실험에 대한 진위 여부가 아니니 더 따지지는 말자. 다만 우리는 이런 식으로 신화(神話)나 의도된 거짓말에 대해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숫자가 나타내는 객관이라는 이유에서 신뢰를 한다.

신뢰가 지나치면 맹신이 되고 이 맹신은 간혹 종교와도 결부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공유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이 있을까? 각자 행복한 삶을 위해서 공동체 내에서 논의하고 나누고자 하는 가치들이 신뢰, 봉사, 믿음, 헌신, 책임 등은 물론 애국과 같은 추상의 영역으로 돌입하게 되면 대개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닫으며 지갑 역시 닫는다. 왜 그럴까?

일전 서울시의 240번 버스 기사의 사건에서 보듯이 미디어에 등장하고 적당한 이야기가 내재되면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서 사람들은 믿고서 비난하거나 추궁을 한다.

생각을 머리로 하냐고 누군가 말했다. 그럼 무엇으로 하냐고 하자 그가 말했다. 생각은 네이버나 다음이 하는거야. 내가 하는 것은 다만 댓글일 뿐이라고 했다. 150억 개의 세포들이 피곤할까봐서 한 개의 세포로 행동하고 기억한다는 말인데 도대체 이러한 말을 한 그는 누구일까.

수많은 정책과 논란들이 국가나 지역의 이익을 위해서라는데 과연 그럴까? 누구? 지역전체나 국가를 위한 이익이 과연 있을까? 있다면 어떤 것일까? 여기서부터 즉 우리가 너무도 당연시 여기는 부분에서부터 한 개의 세포의 활동이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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