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환 <대성여상고 교장>

사람은 누구나 보금자리와 고향이 있다. 나에게 ‘대성’(大成)이라는 이름이 바로 그러하다. 대성은 내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시골에 있는 석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시 마지막 세대로 대성중에 입학했다. 많은 어려움이 있던 청소년기를 회상하면 불쾌함 보다는 오히려 꿈같은 감미로움을 느낀다. 아마 모교에 대한 정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대성은 정지용의 시 ‘향수’에 나오는 것처럼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 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이며 꿈 많은 소년이 낭만을 가꾼 터전이었다.

그 터전에서 후배들의 꿈과 열정을 키워주는 교감으로 근무도 했으니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큰 보람과 기쁨이 있을까?

지금도 운동 삼아 무심천을 걷다 보면 대성중의 의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서서 45년 전의 서정에 젖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까까머리 소년이 되어 운동장으로 달려가는 나의 소년시절 모습이 보인다.

마치 어릴 적 떠난 고향 친구를 오랜만에 다시 만난 듯한 느낌이다.

입학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내덕동(현 대성초가 있는 곳)에 있었으나 3학년 때 지금의 신봉동으로 교사를 이전하게 됐다.

당시 교통편이나 운반도구가 수월하지 못한 까닭에 자기가 공부하던 책상과 의자를 각자 둘러메고 누구는 자전거로, 또 누구는 리어카나 삼륜차에 실어 날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러했다.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뻘뻘 땀을 흘리며 책걸상을 나르던 그때의 추억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개교 66주년, 그 동안 배출된 2만5500여명의 졸업생들이 각계에서 대성인의 긍지를 먹고 살아가고 있기에 더욱 자랑스럽고 나 또한 대성의 뿌리에서 자랐다는 사실이 뿌듯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내 모교 대성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 땅의 참 일꾼을 키워왔고 이것이 바로 대성의 발자취가 되었고 우리의 역사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비록 짧았던 3년의 학창시절이었지만 그 배움의 뿌리는 이후 내가 살아온 인생, 삶의 좌표가 되었고 나의 꿈을 실현시켜 준 소중한 기간이 되었다.

모교 대성은 내 삶의 뿌리이며 고향임을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다. 누구나 학창시절이 있어 그 뿌리가 배움과 가르침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은 당연하지만 모교 대성에 대한 나의 애정은 더없이 크다.

이제 그 대성의 역사도 고희를 바라보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우리가 그곳에서 바르게 사는 길, 지혜롭게 사는 길을 배운 것처럼 옛 모습 그대로 후배들이 대성의 뿌리를 토대로 자라고 있음이 뿌듯하다.

봄이 지나간 자리에 꽃이 피어나고, 가을이 지나간 자리에 열매가 남듯 선배 대성인이 지나간 자리에 우리만의 끈끈함과 대성인의 향기가 남아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대성의 뿌리를 먹고 자란 탓이 아닐까….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