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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대마도의 슬픈 옹주 ‘이연왕희’<이석우>
풍향계-대마도의 슬픈 옹주 ‘이연왕희’<이석우>
  • 이석우
  • 승인 2017.12.0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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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대마도를 누군가 ‘눈물의 섬’이라 불렀다. 대마도가 눈물로 얼룩진 것은 조선의 두 옹주 때문일 것이다.

그 슬픈 운명의 주인공 중의 한 명은 너무나 잘 알려진 고종황제의 딸 덕혜옹주이다.

그녀는 대마도 마지막 태수인 37대 번주 종무지 백작과 정략 결혼하여 딸 정혜까지 낳았으나 딸의 자살에 이은 정신병원 입원과 이혼 등의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오다 귀국하여 창덕궁 낙선재에서 쓸쓸하게 세상을 하직하였다.

여기서 소개하고자하는 또 다른 눈물의 주인공은 조선 14대 선조의 딸 이연왕희이다. 이연은 선조의 본명이고, 왕희란 일본어로 공주 또는 옹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에게 납치당하여 대마도로 끌려가게 되는데,길거리에서 겁탈을 당하고 소리치며 애걸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고 일본의 기록은 전한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1607년 조선 정부는 포로를 찾아오기 위해 쇄환 겸 회답사를 일본에 보내 1400여명을 귀국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정작 이연왕희는 송환자의 명단에 들어 있지 않았다. 전쟁은 그녀에게서 조선의 옹주라는 고귀한 신분을 빼앗아 버렸다. 그녀는 1613년 조선 땅이 보이는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대마도 사람들은 여연(女連), 우나쓰라 마을에 그녀를 묻고 조선국왕희의묘(朝鮮國王姬の墓) 라고 묘패를 세웠다. 여연이라는 옹주를 비롯한 조선 여인들이 끌려온 곳이라는 뜻의 슬픈 지명이 생긴 것이다.

이 이름은 조선의 옹주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상현정 여연에 위치한 사나데공원에 있는 옹주의 탑을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마을의 외진 언덕에 사각과 타원 모양의 큰 돌 4개를 쌓아 올린 탑의 주인공이 바로 조선의 옹주인 선조의 딸이며 바로 임해군의 네 살, 여섯 살 두 남매의 고모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정은 한양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를 때 조선의 임해군과 순화군은 함경도로 피해 있었다. 그때 함경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국경인과 국세필이 두 왕자를 붙들어 가토에게 건네고 항복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가토는 결국 임해군과 그의 여섯 살짜리 딸과 네 살 백이 아들을 일본으로 끌고 가게 되는데 임진왜란이 끝나자 임해군은 조선으로 돌려보내고 딸은 니와세로 지방 영주인 도가와의 양딸로 보내었다. 그녀는 나중에 영주의 첩이 되어 가문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는 처지로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한편 후쿠오카에 남게 된 임해군의 아들은 가토의 양아들이 되어 13세에 승려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16세가 되는 해인 1604년 왕손 일연은 조선에서 끌려온 같은 처지의 승려 일요를 만나게 된다. 그가 바로 경남 하동에서 납치되어온 여대남이라는 인물이었다.

일요는 여대남을 통해 포로로 끌려온 조선인들의 비참함을 알게 된다. 두 승려의 운명적인 만남은 서로의 위로의 차원을 넘어 불도 정진의 계기가 되었다.

임해군의 아들인 왕손 일연은 26살 되던 해에 이 사찰 탄죠지의 18대 관승이 되었다. 38살이 되던 해에 일연은 지바의 탄죠지를 떠나 도쿄로 거처를 옮겨 카쿠린지라는 절을 창건한다.

일연은 이렇게 일본인들을 교화하며 일본 불교계의 최고봉인 성인의 지위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불공의 큰 공덕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불심으로 고모님과 누이를 조선으로 돌아가게 하지는 못하였다.

일연은 말년에 후쿠오카로 돌아와 언덕에 묘안지라는 절을 짓고 은거하다가 조선에서 끌려온 지 73년 만인 1665년 77살 나이로 입적하였다.

지금도 묘안지에는 조선을 바라보는 슬픈 눈동자의 목상 하나가 서 있는데 거기에 임해군의 아들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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