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식 원장

K군의 직업은 헬스 트레이너였다. 20대 중반 남성의 탄탄한 근육과 몸매를 가진 그는, 같은 남자가 보아도 부러울 만큼 생기 넘치는 매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말 못할 고민을 가지고 내 진료실을 찾아왔다. 운동을 시작한 후 수년 간 줄곧 머리카락에 힘이 없어지더니 최근에는 두피가 훤히 비쳐 보이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아버지와 형제들 모두 머리숱이 풍성한데 유독 자신만 이유 없이 탈모가 생기는 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간단한 진찰 후에, 스트레스로 가속화된 안드로겐성 탈모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 가족력 보다는 외부 요인에 의한 스트레스로 생기는 탈모 유형입니다.”
“ 네? 제가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심한 것 같진 않은데......”
K는 의아하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 아니면, 담배나 특별히 약을 복용하고 있지는 않으세요?”
“ 담배는 원래 안하구요. 약이라면...... 다음 달에 대회가 있어서 보충제를 먹기는 하는데, 단    백질로만 되어 있는 건데, 그런 것도 약이라고 할 수 있나요?”

K는 운동을 시작하면서 근육량을 늘이기 위해, 인터넷에서 단백질 보충제를 주문해 먹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보디빌딩 시합을 준비하면서 복용량을 대폭 늘렸다고 했다. 보충제 없이 운동만 해서는 트레이너나 선수 생활이 어렵다고 했다. K에게 나는, 탈모의 주된 원인은 오랜 기간 섭취한 단백질 보충제 때문일 거라고 설명했다.

“저만 먹는 게 아니라, 함께 운동하는 다른 동료들도 보충제를 이용하고 있는데···”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하는 K군.

물론 근육 보충제를 먹는 모든 사람들이 탈모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 연구들에서 아르기닌, 크레아티닌 등을 함유한 근육 보충제를 장기간 복용한 이들에게서 탈모 발병 위험이 증가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보충제를 섭취한 사람들의 혈중에서, 탈모를 일으키는 DHT 호르몬 농도가 5배까지 증가된다는 연구도 있다. 실제로 본 병원에서 모발이식을 받은 환자들 중에 상당수가 단백질 보충제를 장기간 섭취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약물과 남성호르몬의 변동으로 유발되는 탈모는 단기간에 우수수 빠지기 보다는,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시나브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탈모의 가족력이나 소인이 있는 사람이라면 근육 보조제를 사용하기 전 충분히 숙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K군은 결국 고민에 빠져 돌아갔다. 머리카락을 선택할지 보디빌더라는 직업을 선택할지, 기로에 서 있는 듯 해 보였다. 탈모 치료와 모발이식을 주로 하는 나로서는 보기 좋은 근육을 가꾸는데 있어서 보충제가 꼭 필요한 건지 의문이다. 그 뒤에 K군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난 모른다. 하지만 선택은 온전히 환자 자신의 몫이다. 모낭의 건강을 위해 진로를 바꾸라고, 감히 어떤 의사가 조언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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