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꼼수’가 도를 넘고 있다. 이장폐천(以掌蔽天),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그 방법이 얼마나 치졸한지 한편으론 한심하기까지 하다.

일본 정부가 ‘군함도’ 조선인 강제 노동에 대한 설명자료를 도쿄에 설치한다는 계획서를 유네스코에 냈다고 한다.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에 대한 설명을 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도쿄는 군함도 현지로부터 무려 1200㎞ 떨어진 곳이다.

일본으로 강제 징용 당해 생사의 기로에서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노역을 해야했던 조선인들의 처절한 한을 희석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하다.

일본은 2014년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을 신청했던 규슈와 야마구치현을 중심으로 한 중화학 산업시설 23곳을 어떤 방법으로든 ‘성지화’시키려 했다. 이 가운데 7곳은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가 발생했던 곳이다. 특히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군함도’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일본 나가사키 앞바다에 있는 섬 하시마였다. 군함도는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석탄 채굴에 동원됐다가 가혹하기 그지없는 노동 조건으로 100여명이 숨진 곳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군함도 등지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하자 강력하게 반발했었고, 이에 일본 정부는 조선인 노동 사실도 설명하겠다며 한국 정부를 설득해 2015년 등재에 성공한 바 있다.

그 약속을 일본은 손바닥 뒤집듯 바꾸어버렸다.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유네스코에 제출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관련 보고서 내용을 살펴보면 군함도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징용돼 노역을 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한국 정부와의 약속을 뒤집고, 그 대신 한반도 노동자들이 2차대전 때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일본 산업을 지원(support)했다고만 명시했다. 2015년 유네스코 등재 당시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세계에 제대로 알리겠다고 약속했고, 정보센터나 안내판을 설치해 의사에 반해 끌려가 노동을 강요당했다고 표기하기로도 했던 약속은 2년 만에 이장폐천(以掌蔽天)이 돼 버렸다.

박근혜 정부 당시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한다는 명목으로 10억엔을 지불하면서 ‘미심쩍은 합의문’ 발표에 자기들의 만행을 다시는 떠올리지 않겠다는 심사로 ‘불가역적(不可逆的)이란 문구를 굳이 삽입시킨 뒤 소녀상 문제만 불거지면 그 문구를 되뇌이던 그들의 뻔뻔한 태도가 이번의 약속 파기로 자가당착이 된 꼴이다.

이런 안하무인의 태도는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 그들이 한국을 우습게 본다는 것에 그 방점이 찍혀있다. 미국에는 간과 쓸개를 빼줄듯 비굴한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혐한(嫌韓) 시위에는 모른체하는 그들의 태도는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품격 떨어지는 일본 우익 정치권의 모습이 감춰져 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국제사회에 약속한대로 강제노역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후속조치를 조속히 성실하게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그래서 될 일이면 진작에 문제화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번 만은 그들의 오만과 파렴치를 꺾을 국민적 합심이 필요한 때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