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하기 이를데 없는 ‘갑질’의 폐해가 사회적 논란이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낳은 가장 ‘저급한 행태’가 갑질이라는 데 별다른 이의는 없을 것이다. 돈으로 상하를 나누고, 돈으로 주종(主從)을 나누고, 돈으로 삶의 양태를 나눈 뒤 그 돈을 기반으로 불합리한 복종을 요구하는 갑질은 갑질에 당하는 개인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건강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사람이면 당연히 가져야 할 인권을 병들게 한다.

상대 간에 우위에 있는 사람의 행위인 갑질은, 갑을관계에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자본주의적 힘의 기반인 돈과 권력을 가지고 비인격적 모독을 가하는 매우 질 나쁜 것이라 할수 있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던 갑질 행태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병들어 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조현아의 ‘땅콩회항’ 사건이 그렇고, 백화점 모녀사건이 그렇고, 서울대 어느 교수가 교수의 직위를 이용해 제자와 인턴 여학생을 성추행한 것 등이 그렇다. 또 있다. 여직원을 강제 추행한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의 행태가 그렇고, ‘치즈 통행세’를 받아 50억원을 가로챈 미스터피자 회장이 그렇고, 병원재단 체육대회에 선정적인 옷을 입고 춤을 추라고 간호사들에게 요구한 한 병원의 비상식적인 요구가 그렇다. 그 병원은 결혼한 간호사들에게 임신의 순번까지 정하게 하는 관행을 만들게 했다니 해도 너무해 말문을 닫게 만든다.

얼마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세째 아들 김동선씨의 갑질이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미 9월에 발생했던 것으로, 그동안 ‘슈퍼 갑’ 한화의 눈치를 보느라 대한민국 최고의 대형 로펌 ‘김앤장’이 쉬쉬해온 것이어서 더 씁쓸한 맛을 남겼다.

지난 9월 김씨는 김앤장 신입 변호사들과 술을 마시다가 폭언과 폭행을 가했다. 그는 ‘너희 아버지 뭐하시냐, 허리 똑바로 펴고 앉아라, 나를 주주님이라 불러라’며 폭언을 한 뒤, 한 남자 변호사의 뺨을 때리고 여자 변호사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재벌이라는 것을 과시하고 너희와 나는 엄연한 신분의 격차가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며 나는 너희들이 모셔야 할 의뢰인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아주 비인격적인 모욕이었다. 김씨는 지난 21일 사과문을 통해 “당시의 상황은 저도 깜짝 놀랄만큼 도가 지나친 언행이 있었음을 알게됐다”며 “왜 주체하지도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지, 왜 남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절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사죄했다. 그러나 그의 사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에겐 동종의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특수폭행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뒤 지난 3월 징역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석방됐었다. 그때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사죄했었다. 그런데 불과 6개월만에 또 다시 벌어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 변호사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면 ‘반의사불벌죄’에 의해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 재벌이라는 ‘슈퍼갑’의 눈치를 보며 그렇게 될지, 시대의 양심이라는 변호사로서 꿋꿋하게 ‘단죄’에 나설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사회를 병들게 하는 천박한 갑질을 여기서 멈추게 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살아있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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