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문제는 매우 민감하다. 한 사람의 생이 마감된다는 것보다 ‘그’에게 더 큰 문제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고, 우리 모두는 바로 ‘그’에 속하기 때문이다.

‘연명의료 결정사업’ 한 달 만에 ‘합법적 사망’을 택한 환자가 7명이 나왔다. 나중에 질병에 걸렸을 때 등을 대비해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이도 지난 24일 시점으로 2197명에 이른다고 한다.

‘연명의료 결정사업’은 보건복지부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의 시행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지난 10월 23일부터 2018년 1월 15일까지 시범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2018년 2월 시행하게 된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내년 2월부터 담당의사와 해당분야 전문의 1명으로부터 임종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환자가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인공호흡기 착용의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아무런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스스로 ‘인간답게,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하는 입장이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종교계 가운데 특히 천주교계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인간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에 대한 큰 우려감을 표하고 있다.

더욱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공임신중절에 대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지난 26일 발언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발언에 대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위원회는 “말씀 하신 바 없다”고 잘라 말하며 크게 반발했다. ‘새로운 균형점(new balance)’ 발언의 맥락을 살펴보면 낙태죄 폐지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를 한 여성이 진정으로 속죄하면 하느님은 영원히 누구도 단죄하지 않는다”라는 게 교계의 입장이다.

생명 문제에다 죽음의 문제까지 중첩돼 있는 형국인 까닭에 교계의 반발은 그만큼 강도가 더 강할 수밖에 없다. 삶과 죽음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 뜻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교계의 일관된 입장이다.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삶과 죽음만큼 중요한 문제는 없다. 그에게 태어남이란 우주의 생성이요, 그에게 죽음이란 우주의 소멸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문제도 이에 앞설 수는 없다.

그런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를 제도적 장치, 이른 바 ‘합법’이라는 외피를 씌워 접근하게 될 때 우리가 자칫 잃을 수 있는 것이 ‘생명성에 대한 윤리의식’이다. 생명의 윤리란 법적 장치를 마련한다고 그 본원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 많은 고민과, 더 많은 토론과, 더 많은 함의(含意)가 필요한 까닭이다.

이는 한 번 결정하면 되돌리기 힘든 불가역적(不可逆謫) 성질의 것이 될 수 있다. 우리들이 삶이라는 행로와 죽음이라는 이정표를 지나가면서 조급하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웰빙’과 ‘웰다이’도 좋지만, 그 건너편에 숨겨져 있는 본원적 질문, 생명과 죽음에 우리들이 깊은 고민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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