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 중부대 교수

(최태호 중부대 교수) 가을이 지나고 바로 겨울이 왔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계절이지만 여전히 제 멋대로 왔다가 슬그머니 사라지고 만다. 언제 왔는지 반기려고 하면 벌써 저만치 사라져 버린다.

올해는 홍시도 못 먹어 보고 지나가 버렸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리움을 접어둔지 오래 되었다. 작년에 돌아가긴 장모님은 홍시를 유난히 좋아하셨다.

단물이 질질 흐르는 조치원 복숭아와 역시 붉은 물이 줄줄 흐르는 늦가을의 홍시를 유난히 좋아하셨다. 그래서 우리집 발코니에는 항상 과일이 떨어지지 않았다.

치매로 인해 힘든 노후를 보내고 계셨지만 재가요양보호원에 갈 때면 밤이나 대추 몇 개 주머니에 넣고 가서 친구들에게 나눠주시고, 집에 들어오면 우선 발코니로 달려가 복숭아나 홍시 두어 개를 순식간에 해치우셨다. 지금도 퇴근하면 “왔어?”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평생 한 번도 남에게 싫은 소리 해 보지 못한 분이었는데 세월을 이길 수 있는 장사는 없는지 홍시만 남겨두고 떠나셨다. 이런 저런 연유로 해서 그 분의 빈 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날이다.

아침에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어제는 몇 번을 해도 안 받으시고 오늘 아침 일찍 확인했다고 하면서 전화를 하셨다. 나이 탓이려니 하지만 요즘 들어 자주 전화를 두고 나가시는 모양이다. 평균 하루 한 통은 하지만 편찮으실 때는 하루에 수 통 씩 걸 때도 있다. 어제는 날씨가 추워서 계속 집안에만 계셨다고 하는데, 아마도 나이 탓으로 잘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다 보면 저절로 소리가 커진다. 사실 잘 들리지 않으신다고 하니 자꾸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필자도 어느 순간부터 전화를 할 때 크게 말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가끔 아내가 전화할 대 너무 소리가 크다고 할 때는 민망하기도 했다. 그러던 아내도 이제는 60고개를 넘더니 귀가 많이 어두워졌다.

작은 소리는 잘 듣지 못한다. 필자도 그렇다. 남들이 이야기 할 때면 80% 정도밖에 들리지 않는다. 앞뒤 문맥을 잡아가며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계절은 그렇게 우리를 배반하고 낡은 몸뚱이만 남겨놓고 도망가 버린다. 야속한 놈이다. 그리움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팽개치고, 건강도 저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인 양 가지고 가 버린다. 참으로 야속한 놈이 계절이고 세월이다.

전년에 비해 눈은 더욱 침침해졌고, 군 시절부터 따라 다니던 이명은 이제 파도소리를 내며 커져가고 있다. 이제는 내면을 바라보고, 지혜의 소리를 들으라고 하는 것 같다. 눈도 침침한데 보기 싫은 것 보지 말고 내면을 들여다 봐야 하나 보다. 듣기 싫은 소리도 많이 들리는데 듣지 말고 속으로 들어가 지혜의 소리를 들어야 하나 보다.

그러기에는 귀에서 들리는 파도소리가 너무 크다.

군 시절 사격장 조교로 있을 때부터 들리던 것인데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귀를 괴롭힌다. 그 때 귀울림이 너무 심해 귀를 막았더니 고참이 발길질을 했다. 참으로 나쁜 인간이다.

그 후 지금까지, 아니 늙어서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명은 따라다닐 것이고 그놈의 고참은 원망의 대상이 될 것이다. 왜 그리 미련하게 사람을 괴롭혔을까? 이제는 잊고 용서할 때도 됐는데 피곤해서 귀울림이 심할 때면 아직도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가 되었건만 아직도 젊은 혈기가 남아 있는가 보다. 젊다는 증거가 아닌가 자위해 본다.

세월은 그렇게 그리움과 원망을 남겨둔 채 저만치 사라지고 있다. 아름다운 단풍도 낙엽으로 떨어지고, 고왔던 꽃잎도 열매만 남겨두고 사라졌다. 세월보다 천천히 달리고 싶은데 육신과 영혼이 따로 논다.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은데 돌아보면 항상 아쉬움만 남는다. 좋은 사람, 온유한 사람, 친절한 사람, 모두에게 밝은 미소를 띄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방금 어머니와 통화했는데 벌써 어머니가 그립다.

홍시를 드시면서 미소짓는 장모님의 모습이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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